토요일, 11월 22, 2008

검은 봉지를 들고 뛰었다.

쥐색 코트 주머니에 손을 그득이 찔러넣고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가 선 장소의 정면에 있는 분식집에서는 원색의 버라이어티 쇼가 나오는 TV와, TV는 주시하지 않고 수선을 떨다 물끄러미 밖에 선 나를 쳐다보는 사내아이들 몇몇, 그리고 부산스레 접시를 나르는 주인 아주머니가 gif 파일처럼 미묘한 시간차를 두고 자연스러운 양 움직여댔다. 김이 조금 서린 유리문을 밀치고 들어와 김밥 한 줄에 주먹밥 하나 주세요, 하고 용건을 건넨다. 메시지가 전달되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얄팍한 지갑으로 허기를 채우기 딱 좋은 공간에서 느껴지는 적당한 아늑함과 동시에 오래 머무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이곳을 어서 떠나고자 하는 성급함이 쇼에 나오는 남자 게스트처럼 두리뭉술하게 싱글거리다 사라진다. 나는 삼천 원을 내고 두 종류의 끼니가 담긴 검은 봉지를 받아든다. 

휴대폰에서 표시되는 날씨 정보는 모든 기상관련 정보가 그러하듯 상대적인 값으로만 받아들이고 현실생활에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온도는 3도를 가리키고 있지만 보도의 패인 자리마다 살얼음이 번들거리고 있다. 버스는 간발의 차로 떠났다. 연애에서건 여행에서건 버스는 언제고 다시 오게 마련이지만, 마을버스는 기다림의 간격이 짧고 표준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단연 훌륭하다. 봉지 안의 식량이 온기를 잃어가는 것에 조금은 마음아파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견딘다. 얼굴짝이 얼어붙어 있으면 시간 역시 더디게 가는 것 같다. 횡단보도 맞은 편의 만두를 파는 트럭에서 부연 김이 냉기와 경합하는 모습이 보인다. 어차피 나누어 먹을 이는 없으므로 지금의 식사 계획에 만족해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 버스와 함께 온다. 

버스는 결빙의 속박을 뿌리치듯 괴성을 내며 열지어 선 사람들 앞에 섰다. 버스 허리춤치의 좌석에 앉아, 눈을 감고 짧은 졸음을 청하다 간혹 눈을 떠 교통카드를 찍고 버스 안으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차림새며 든 것들을 살핀다. 초라한 비닐 봉지나 먹을 것 따위를 든 이는 아무도 없는 늦은 시간이다. 버스가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하기를 바라며 아직 온기를 잃지 않은 밥덩이들을 어루만지다, 왠지 이네들의 열을 빼앗아선 안될 것만 같아 멀찌감치 손을 뗀다. 치밀해봐야 알아주는 이 없는 계산을 하게 되는 것은 버릴 수 없는 습성이다. 버스는 저쯤치에서 턴, 저 사람은 이쯤에서 내린다, 방에 도착하는 시간은 정확하게 몇 분 후. 

버스에서 내려 무단횡단을 한다. 맞은 편 정류장에는 추위에 떨며 서로를 부둥켜 안은, 혹은 서로의 온기를 탐하기 위해 추위 속에 놓인 두 쌍의 연인들이 제각각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왠지 내 식량의 온도에 대해 생각한다. 이십육도, 아니면 이십삼도. 우리는 서로의 온기를 탐하는 관계이기보다, 삼십육도의 온기를 유지하기 위해 삼 분 후에 일방적으로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남김없이 먹어치울 파괴적인 관계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열교환법칙 따위를 떠올리는 이 불균등한 관계가 저들의 연애보다 합리적일 것임을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든다. 나는 무단횡단을 하는 속도에 가속을 더해 달린다. 손가락에 가느다랗게 걸린 검은 봉지의 무게감이 나쁘지 않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