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옷자락에서 구역질이 날 정도로 지독한 동물의 냄새가 났다. 태운 듯 씁쓸하고도 톡 쏘는 듯한 냄새는 죽음의 흔적이다. 어쩌면 냄새로라도 옷자락을 붙들어 원망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동물성 단백질로 배를 불린 날에는 아무리 양치질을 해도 입 안에서 쓴내가 가시지 않았던 것처럼. 벗어던지고 싶은 패딩에 얼굴을 묻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입김이 유령처럼 떠돌았고, 나는 두려운 줄도 모르고 짧은 잠을 청했다.
옷에 밴 고깃내처럼, 우리는 입에 밴 시시껍절한 농담들과 소식들을 나누었다. 언제고 이야깃거리들은 샵과 플랫을 넣었다 빼는 식으로 미묘하게 변주되었지만, 때때로 목젖까지 차오르는 포만감을 그리워했던 것처럼 화제의 익숙함에 모두들 안도한 모습이었다. 새로운 이야기가 등장하게 되는 순간 우리가 전연 다른 관계로 돌변하게 될는지 모른다는 희미한 불안감이 번뜩였고, 금세 말들은 도돌이표처럼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되었다. 벌써 만난지 4년이 되었다는 말이 왠지 불판에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는 무엇같다. 술은 아이스크림처럼 달았다. 익숙한, 또한 흉물스러운 거리에서 단 맛을 쩝쩝대며 헤어진 것은 가장 잘 한 일이었다.
언제고 무엇인가 되자고 전망을 나눈 적은 없었으므로 헤어지는 발길 역시 가벼웠는지 모른다. 무엇이 되어 만나자고도 하지 않았다. 실은 무엇이 된다 한들 큰 상관이 없었다. 그저 죄책감을 느낄 것이 없다는 데 대한 죄로, 혹은 추억할 만한 것이 거창하지 않다는 데 대한 죄로 옷깃마다 사역같은 냄새들을 매달고 헤어지면 그만이었다. 우리는 결코 면죄부를 얻기 위해 만난 적이 없다. 시간의 그림자가 길어질수록 죄들은 늘 주름처럼 눈 밑에 열지어 섰으므로. 오히려 우리는 서로의 죄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함께 나이들어 간다는 것이 따스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서로의 온기가 아니라 죄, 그 죄를 확인하던 벌건 불판의 열기 때문일까. 아무렴에야, 따스함에 치뤄야 할 댓가는 며칠은 더 갈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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