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으로부터 끓어오르는 가래의 내음이 역하다. 목구멍에 뜨거운 물을 들이붓는 외에는 달리 처방할 도리가 없다. 좁은 방 서랍들을 파헤쳐 봐도 약알 하나 나오지 않아, 책상 위를 뒹굴던 육 개월 전쯤 처방받은 정체모를 약을 씹어 삼킨다. 감기약이었을까, 아니면 진통제였을까. 열이 진득허니 올라 죽은 듯이 자면 좋으련만, 이미 연료인 꿈을 너무 많이 소비한 탓인지 한 번 깬 정신을 놓기가 쉽지 않다.
목 능선을 타고 오르는 차가운 온도계를 힐끔 보고 간호인은 숫자를 끄적인다. 37.7. 높은 값인지, 높다면 얼마나 높은지를 몰라 고개를 갸우뚱할 새도 없이 의사는 집게로 입을 벌린다. 드라큐라처럼 양 어금니 있는 께에 철심을 박아넣은 날이라, 입을 벌리는 게 여간 민망치 않다. 잇몸을 향해 곤두선 두 개의 임플란트가 번쩍인다. 밥을 먹을까, 책을 읽을까, 모임에 갈까, 하는 고민들은 죄다 그것들의 실행가능성에 대한 질문으로 바뀐다. 질문에 대한 답은 수시로 번쩍이며 갈팡질팡했고, 얕은 졸음과 분투하는 정신도 죽어가는 전구처럼 깜박였다.
몸이 아플 땐 세계에 대해 잠잠한 사람이 된다. 방구석에 앉아 아프다고 여기저기 소문을 내 봐야, 걱정해줄 사람에게도 신경쓰지 않을 이에게도 불필요한 정보일 뿐이다. (보살핌의 고리들로부터 자유로울 수야 있으랴만, 버틸 수 있을 만큼은 버티는 게 미련스럽단 얘길 들을망정 마음이 편하다.) 몸은 정말이지 불필요한 신호들과 잡음들이 끊이지 않는 메트로폴리스의 밤거리 같아서, 잠시 잠깐 페이스를 놓치면 따라잡기가 어려운 일이 된다. 며칠째 쌓여만 가는 일간신문처럼, 그러나 대개의 사건들은 아슬아슬하게도 예측가능한 범위 내에서 경악스러울 것이다. 물론 진정한 사건은 그 예측가능성을 넘어서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야 있겠는가. 그러므로 예측불가능한 수면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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