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12월 20, 2008

from [짧은 여행의 기록] by 기형도(1990).

  나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문다. 그래, 그녀는 잘 참아낼 것이다. 어쩌면, 이발사 사내와의 영원한 결별까지도 참아낼 것이다. 나는 앞으로 그녀가 잘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사내에 대해 그녀가 계속해서 사랑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이 증오의 힘이든 애정의 힘이든 상관 없는 일이다. 환상이란 삶의 도피이며 정면 대결에의 회피라는 생각은 좁은 편견의 오류일 뿐이다. 삶과 정면대결하여 절망을 극복하기 위한 우리들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들은 모두 어둡고 습습하여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러나 사람들에게 각자 다른 모습으로 추정되는, 환상(幻想) 또는 허상(虛想)에서 비롯되어 존재할 것이다. 우리의 정신적 양식(糧食)이 비롯되는 곳은 환상이다. 그리고 그러한 환상이 존재하는 어두움의 창고를 인식하는 개인의 성숙에서 우리의 삶과의 끈질긴 투쟁은 그 무기를 얻게 되리라. 설령 그 이발사가 그녀 앞에 영원히 모습을 나타내지 않을 지라도, 그녀 앞에 언젠가 다른 사람, 다른 시차(時差)로 새로운 끈이 나타나 그녀를 지탱해 줄 때까지의 그 생존(生存)의 힘은 그녀의 이발사에 대한 애증(愛憎)일 것이다. 

(...) 

  (...) 그래, 나는 내 이름 위에 이삿짐처럼 얹힌, 내가 끌고다녀야 할, 생(生)의 무게를 너무도 비극적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알 수 없이 막막한 권태와도 같은 생의 무게와의 시이소 놀음에서 언제나 패배함을 스스로 즐기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녀석과 나는 그러한 중량감과의 동행(同行)의 방법이 달랐던 것이다. 그가 그러한 삶의 중량감을 언제나 무거워하여 마침내 그것을 던져버림으로써 해결한 반면, 나는 어쩌면 그것을 은밀히 즐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내 의식을 세게 쳤다. 내 삶 곳곳에 미리 숨어 있다가 갑자기 악수를 청할 당혹한 그 절망의 정체를 나는 희망이라고 불러온 것은 아니었는지. (...)

(...)

  (...) 그러나 행복하다는 환상, 아니 착각 그 이후의 것은 이미 착각이 아님을 사내도 알고 있으리라. 렌즈는 사물의 허상(虛像)을 보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실상을 가리키는 좌표가 된다. 행복이라는 것은 하나의 관념이지만 우리의 신념속에 머무는 관념은 그 어떤 사물보다 견고한 것이다. 

- "환상일지", pp. 114-118.
  

댓글 2개:

  1. 기형도는 자기의 메모가 다 출판될 걸 알기라도 한 듯이 글을 썼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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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까. 녀석과 나는 그러한 중량감과의 동행(同行)의 방법이 달랐던 것이다. 그가 그러한 삶의 중량감을 언제나 무거워하여 마침내 그것을 던져버림으로써 해결한 반면, 나는 어쩌면 그것을 은밀히 즐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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