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4년 프랑스, 디종은 평화로운 도시다. 인도차이나를 둘러싼 식민지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어른들의 식사시간의 단골 메뉴인 정치는 현실감이 없다. 불투명하게 돌아가는 세계에서 소년 로랑(Benoit Ferreux)이 정치 대신 선택한 것은 찰리 파커의 재즈며, 헨리 밀러의 문학이며 하는 것들이다. 소년은 세계가 무엇인지, 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하지만 현실로부터 온전히 발을 떼기에는 여전히 발돋움이 필요한 나이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레코드판을 훔쳐 듣고, 금서를 읽으며 자위를 한다고 해도 학교에는 늦지 말아야 한다. 종교를 믿지 않을지언정 복사는 서야 하는 것이다. 소년은 두 세계에 걸쳐 있는 존재이다. 합법과 질서의 세계, 그리고 불법과 무질서의 세계. 그러나 소년은 혼란스럽다. 질서 속에서 따스했던 엄마의 품은 사실 소년의 것이 아니라 얼굴 모를 남자의 것이고, 아빠는 소년을 증오한다. 신의 복음을 가르쳐야 할 학교는 군국주의를 내장하고 있으며, 성스러운 신부는 소년들의 성을 탐한다. 로랑에게는 오히려 형들이 보여주는 짓궂은 일탈과 폭력, 외설과 불안정으로 점철된 불법과 무질서의 세계가 더 현실에 가까운 것만 같다. 그러나 두 형들이 종종 흉내내며 로랑을 놀리듯, 이들은 엄마-아빠가 대변하는 질서와 위악이라는 역설에 대한 안티인 동시에 그 상동으로서의 역설을 보여주는 존재들이다. 로랑은 형들이 보여주는 세계에 늪처럼 빠져들며 그들을 존경한다 말하지만, 기실 그들은 로랑의 첫경험을 훼방놓듯 언제고 로랑이 현실세계로 진입하는 것을 끌어내릴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엄마가 로랑을 언제고 순진무구한 아이로 여김으로써 소년의 재능을 아이의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것처럼.
그러나 ‘아이’라는 말은 소년에게 무엇보다 감추고 싶은 오점이다. 소년에게는 모든 종류의 일탈이 다 어른됨, 혹은 ‘아이가 아님’에 대한 인정투쟁인 듯 보인다. 어른됨의 가장 강렬한 핵심에 형들의 그것보다 작은 자신의 성기가 있을 것만 같았던 소년은 엄마로부터의 분리를 다짐하듯 엄마를 안아주고 인사를 나눈 뒤에 형들이 안내한 사창가로 떠난다. 소년이 원했던 것은 따뜻한 키스지만, 손님인 그는 아이처럼 성기를 씻김당한 뒤 키스없는 섹스만을 허용받을뿐이다. 소년이 여자를 안은 모습은 엄마를 안을 때와 닮아 있다. 소년은 엄마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건만, 형들의 도움으로 다시 엄마를 닮은 여자를 안는다. 로랑의 모든 ‘분리’의 시도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것이 부모와 형들에 귀속되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분리가 엄마라는 존재를 우회해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랑은 자살을 까뮈를 읽으며 관념으로만 상상할 뿐, 실천에 옮길 수는 없다. 로랑에게 있어 자살은 모든 것으로부터의 독립과 선택이 아니라 엄마라는, 그 자신의 성장에서의 핵심으로부터의 도피였기 때문이다.
소년은 엄마와 함께 요양을 떠난다. 아직 열넷인 소년은 여자아이들 앞에서 열다섯이 되었다가, 열여섯이 되었다가 한다. 실제로 소년의 얼굴에서는 점차 어른의 표정이 읽힌다. 소년은 ‘어른처럼’ 거들먹거리고 주문하며 술을 마시는 법을 익혀 나간다. 그럼에도 소년은 해갈되지 않는 무언가를 더듬어낼 수 없다. 엄마가 애인과 잠시 도시를 떠난 사이, 소년은 엄마의 옷을 입고 화장을 해 본다. 소년은 엄마가 가지고 싶다. 하지만 가질 수 없다. 소년은 엄마가 되고 싶다. 하지만 될 수 없다. 거울에 비친 분칠을 한 자신의 모습을 보지만, 엄마가 될 수는 없다. 어른이 될 수가 없다. 다시 엄마가 돌아오고, 혁명의 날 축제 기간 소년은 엄마와 친구가 되기로 결심한 듯 보인다. 그러나 소년은 어른이 되어야 했다. 성장의 핵심에 다다라야 했다. 엄마는 소년에게 두 번 다리사이를 내어 준 셈이다. 아이로 태어날 때, 그리고 어른이 되려 할 때.
제네바 협정이 맺어졌다는 소식이 들려 오고, 로랑의 어른되기 프로젝트도 끝날 때가 된다. 그 역시도 조국처럼 그가 어른이 되기 위해 필요로 했던 식민지들을 하나씩 떠나보내야 한다. 갑작스레 온 가족들이 모인 그 날 아침, 언제 빚어졌는지도 모를 어떤 불화는 실없는 웃음으로 증발해버린다. 어쩌면 일종의 이행이었는지도 모른다.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어떤 파국도 우발적으로 찾아와 이리 자연스레 날려보내야 하는 것인 마냥, 영화는 뒤틀어진 세계에서 어른됨이라는 불투명한 투쟁을 완성시킨다.
나씩 떠나보내야 한다. 갑작스레 온 가족들이 모인 그 날 아침, 언제 빚어졌는지도 모를 어떤 불화는 실없는 웃음으로 증발해버린다. 어쩌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