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12월 07, 2009

the other room.

내가 머문 방의 전면을 차지하는 유리창의 이중 블라인드를 마치 닻을 끌어 올리듯 열면, 바다를 면한 햇빛과 함께 무수한 방들이 눈을 굼벅인다. 네 평 남짓한 정사각형들이 레고블럭처럼 쌓여, 마천루라고 불리는 거대한 군집의 속살을 빼곡이 메우고 있었다. 관광용 선박들의 호화로운 번쩍임을 제외하면 까맣게 숨죽은 밤의 건물들 사이로, 그것들이 수천 년을 지켜 온 영물처럼 그리 서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햇살은 새하얀 시트에 누운 이 도시의 객을 알몸으로 만든다. 나는 한 아름이 채 안 되는 창 밖으로 애처롭게 내밀어진 굳은 철심같은 빨랫대 위에서 애처롭게 빨래가 나부끼는, 수천 개의 방들과 평행선에 앉는다. 나는, 창이 굳게 걸린 하나의 방 안을 들여다본다. 그 안에는, 찬장 가득 쌓인 담배 보루들과, 비루한 만찬과, 가련한 탱고가 빨랫감이 나풀대듯 피고 또 진다.

기름때가 빈들대는 음식들을 접시를 깨뜨릴 요량으로 꾸욱 꾹 눌러 담아 다시 입으로 가져 담는, 그 입은 방들이 제 두터운 술을 노려보는지도 모르는 채로 남루합네, 후집네, 험담을 늘어 놓는다. 마주 앉은 또 다른 입은 과묵한 행세를 하며 저래 뵈도 집값이 얼마 하는지 알면 못 할 말이라며, 접시에 누운 생선 대가리같은 미소를 흘린다. 저들 입이 열릴 때마다, 나무인형의 코처럼 빨랫대가 길어져 스카이라운지의 통유리를 뚫는 상상을 한다. 저 빨래가 마르기를 기다렸다 또 다음 하루의 빨래를 거는 이들의 삶도, 나도, 하늘처럼 맑고 투명해서 보일 리가 없다. 접시에 놓인 고깃조각이거나, 연봉이나 집값 같은 숫자가 아닌 모든 것들은 추상일 게다.

꺄무룩 잠이 든다. 그가 돌아왔다. 쫓기든 공항으로 떠나던 모습 거의 그대로, J의 손에 이끌려, 멋쩍은 듯 수줍은 듯 문간을 사뿐 넘어선다. 다른 누군가가 그와 포옹하려는 찰나, 급히 뒤에서 그를 끌어 손을 붙잡는다. 어느 쪽인지, 손에 온기가 거의 없다. 적잖이 실망한 기색인지, 불편함인지, 곧 이은 왁자지껄함에 잠깐의 공기는 나와 함께 씻겨 나간다. 그 순간에도 나는 써야 할 글에 아차, 라는 입말을 붙여 가며 생각한다. 생각한다. 하얗고, 아늑하고, 피곤하고, 걱정스럽고, 혼자인 이 방을 몇 밤이나 더 복제할 수 있을까. 혹은, 언제까지 타인의 왁자지껄함을 거름삼아 침묵을 지킬 것인가, 하는. 무엇으로부터도 쫓기듯 나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으슥한 새벽공기가 아득한 꿈으로부터 잔잔히 채광이 아침처럼 밀려 오는 현실로 나를 몰아낸다.

목요일, 12월 03, 2009

the point of no return.

멀어져가는 손들을 바라본다. 지그시 밀착되었다가 탯줄이 빠져나오듯 그것들이 홀연히 놓이고, 전연 다른 국면으로 전치되는 움직임들이 흐릿한 필름의 한 장면인 양, 지지직거리며 멀어져 간다. 머쓱히 덮쳐 온 그림자처럼, 어떤 시점에 놓인다. 붙잡고 놓는 것은 그다지도 중하고 귀한 문제였던가. 그것은 일종의 소실점이었다. 시선의 중력이 깊숙이 뿌리내린, 따끔하고 또 묵직한. 버스가 올 때 나는 그 시점을 놓친다. 통증과 징후는 때로 같은 것으로 둔갑해 우리를 홀리지 않던가. 그럼에도, 꿈쩍하지 않는 그것을 나는 결코 내어놓지 않을 테다. 볕을 보기 전에 숨죽은 그것, 공기와 닿으면 산화될 그것, 그것. 나는 한 번도 그것을 알았던 적이 없노라고, 종국에는 버틀러 식으로 말하고 싶은, 피할 수 없는 지점에 내몰린다. 흐리어진 세계는 미동도 않은 채 어슴푸레한 비명만을 들릴 듯 말 듯 내어놓는다. 밀물처럼 밀려와 눈꺼풀이 닫힌다. 무수한 눈들이 종잇장같은 그 살점 뒤 세계에 있다.

금요일, 11월 27, 2009

지우는 텍스트.

대뜸 궁상각치우, 라는 단어가 떠올라 구글링을 해 본다. 글자를 입력하는 동안에도 궁상인지 궁산인지 헷갈려 손가락을 궁싯거렸다. 쓸 데 없는 어휘에 궁상을 떨고, 쓸 데 없는 것과 쓸 데 있는 것을 판단할 잣대를 가진 것에는 관대해진다. 한국어 사전 옆에서는 멈추지 않는 에너지라며, 초콜릿바 배너 광고가 어지러이 들썩인다. 공기같던 이미지들이 갑자기 생활 속으로 성큼 흙발을 들일 때, 나는 밤손님을 마주하듯 그 춤추는 도트들을 가만히 노려본다. 그날 밤, Y는 이미지들의 날선 매무새에 베어 어깨를 들썩였다. 텍스트가 무기력한 만큼이나 이미지들은 더욱 더 작두를 탔다.

요사이에는 종일 공기같던 무딘 글자들이 해가 지면 불쑥 도드라져 새카만 벌레처럼, 혹은 형체없는 괴수처럼 비명을 질러 댄다. 아, 그 비명은 소리가 없다. 그것들은 오히려 작은 폭발에 가깝다, 연신 검은 피를 쏘아대는. 어쩌면 그것들은 집으로 가는 650번 버스에서부터 연쇄적인 죽음을 준비하는지도 몰랐다. 지난 며칠간 집에서는 단 한 글자도 잡히지가 않는다. 아무리 써도 온통 하얗다. 귤물이 든 손으로 지문이라도 남기고 싶다. 지문이 남은 자리에서부터, 오렌지즙으로 쓰여진 글자에 초를 비추인 양으로 암갈색의 흔적을 좇고 싶어진다. 개학 전날 40편의 거짓 일상과 느낀 점 따위를 몰아 쓰고서, 다시는 펼쳐보지 않은 일기장이 떠오른다. 나의 방, 이었던 곳. 푸싯, 먼지가 내려앉듯 또 검은 피가 폭발해 기억을 덮는다. 검정은 쓰기가 아니라 지우기의 신호이다.

금요일, 10월 30, 2009

부러 하는 말.

처음 이사온 겨울에는, 책장도 침대도 없이 바닥에 덩그마니 쌓인 책들과 함께 몸을 누이고서도 추운 줄을 몰랐다. 그 때 내가 무얼 하고 있었으며, 주로 누구와 말을 섞었던가 하면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날씨처럼 당연한 일이련다. 꿈을 꾸지 않는다. 세심히 공들인 가내 풍경이 가득한 갤러리에 더는 걸음하지 않는다. 합성 수세미에 푸릇한 싹이 올라도 아직은 사용할 수저가 남았으므로 그것들은 다문 며칠간의 생을 더 얻는다. 이런 글을 차마 갈음하지 않는다. 생각이 꾸물꾸물 차오를 기회조차 주지 않으려는 양, 버스에 오르면 눈꺼풀을 앙다문다. 신문을 읽지 않는다. 밑줄을 긋지 않아도 되는 무엇도 읽지 않는다. 냉장고에는 신 김치가 든 반찬통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지도 몰랐다. 그것들이 펑, 하고 터지는 상상 따위도 차마 하지 않는다. 별안간 두려워 혹여 며칠 연락이 안 되거든 이 곳을 찾아보아 달라고 손가락을 바삐 움직였을 따름이다.

문제는 기억이다. 퍽 아끼곤 했던 표현들이 총총거리며 기억의 저장고에서 달음질쳐간 자리에는, 까끌까끌한 손말만 남아 각을 잡고 서 있다. 망각을 식민화의 징후라고 한다면, 나를 식민화하는 힘이 대체 무엇인지를 나는 차마 질문할 엄두를 내지 못해 물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마른 목이 축여지고 나서야 냉장고에 든 마실 것들이 떠오른다, 길을 꺾자 스치기만 하는 기구한 인연처럼. 나는 그 얼굴들을 마주할 기력이 없다고 조용히 뇌까릴뿐이다. 그 때, 키득거리는 작은 소동들이 모기처럼 날아오른다. 나는 그것을 손바닥에 움켜 쥔다. 시간은 졸지에 슈레딩거의 고양이가 된 모기의 숨에서 멎는다. 나는 차마 손을 펼치지 못한 채 우물쭈물이다. 변경 너머에는, 자명한 무엇을 요구하는 또다른 관성의 세계가 놓여 있었음을 경계를 넘기 전에는 알 수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손바닥을 펼치면, 모기 혹은 모기였던 것은 시무루루룩, 하고 어디론가 흘러내리고 없다. 나는 잠시 게워낸 관성을 다시금 위장 끝까지 밀어넣는다. 속이 편치 않은 것은 은밀히 싹이 트고 자라나는 증오와 무기력, 자유주의가 가장 혐오하는 동시에 강렬히 필요로 하는 그것들의 독함 때문일게다.

일요일, 10월 25, 2009

달걀 삼키는 남자.

모든 연애가 그렇듯 시간 속에서 처음의 열정은 온도와 밀도가 달리진다. 나쁘진 않다. 열정에 빠져 있는 동안은 일상이 바스러지고, 그러다보면 일상이 열정을 갉아먹는 시간이 와 있다. (...) 일상은 집요함과 강인함으로 우리를 길들인다. 랄라를 받아들인 건 스티브에 대한 열정이었고, 랄라를 미워함은 삶에 대한 열정일 뿐이다.

- 정미경(2006), "달갈 삼키는 남자",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일요일, 9월 20, 2009

수요일, 9월 09, 2009

The un/true blood, the un/true nation.

 

The un/true blood, the un/true nation

 

 

민족주의에 대한 리딩을 정돈하고 있을 주말 무렵, 자주 가는 온라인 공간들을 가득 메운 논란이 하나 있었다. 굳이 ‘사건'을 정리하자면, 한 남성 아이돌 그룹의 재미교포 3세 출신 멤버가 데뷔 전 미국의 소셜네트워킹사이트인 Myspace에 ’한국‘과 ’한국인‘을 비하하는 글을 여러 차례 올렸고(올린 글이 남아 있었고), 그 사실이 최근 ’발각‘되어 온라인 공간에서 문제가 된 것이다(동아일보, 2009년 9월 5일). 해당 아이돌 그룹 및 팬덤에 애정과 비판적 고민을 담아 글을 썼던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써, 나는 주말을 지나며 쏟아진 300여 개의 관련 기사와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온라인 공간(포털, 블로그 등)의 익명의 ’비난들‘과 팬덤의 자기규율을 보며 고민했으며, '나'를 머리 싸매게 하는 그 고민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페미니스트들은 극히 개인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 이를테면 문화적 향유와 취향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구성되며 정치적 효과를 갖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한국(인) 비하‘ 논란을 두고 바로 그 개인적인 취향, 즉 이미지와 재현 및 그 생산과 소비를 둘러싼 애정과 혐오를 관통하는 민족주의 정치학이 내게 중요하게 다가왔음을 알았다. ’한국인‘으로서 ’당연히‘ 모욕감을 느끼고 해당 스타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이들의 강렬한 증오와 분노는 대체 어디로부터 오며, 무엇을 향한 것일까? 그리고, 그들을 보며 ’한국(인)‘을 ’비하‘했다고 하는 ’재미교포 출신‘의 해당 스타의 치기어린 과거 행적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저러한 ’한국사회‘의 반응에 지끈거리는 ’나‘의 분노는 또 대체 무엇인가?

 

'Korea(n)' revisited

 

한국사회에서 ‘한국인’이라는 국적(nationality)의 문제는 늘 당연한 것(taken-for-grantedness)으로 잠재해 있다가 그것을 위반하는 순간에만 수면 위로 부상한다. 이 사건에서, 온라인 공간의 무수한 ID들은 “한국인인 나도 욕하지 않는” ‘한국’을 ‘모욕’한 아이돌 스타를 비난하며,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재)발견한다. ‘한국’을 ‘모욕’한 이를 단죄하기 위해 동원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재)발견이, 이처럼 ‘한국(인)’이라는 경계의 위반자를 강렬히 증오하고 타자화하는 방식으로 가능해진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화내고 분노하지 않는 모든 이들은 이제 ‘한국(인)’이라는 경계의 위반자가 된다. 위협받는 ‘한국’을 강력히 옹호하고 지키는 것이 바로 ‘한국인’의 정체성으로 (재)구성되는 순간이다. 이 때의 ‘자랑스러운’ ‘한국’은 언뜻 제국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이러한 역설은, ‘한국’이라는 기표의 의미가 만들어지는 방식으로부터 온다. 과연 ‘모욕’되었다고 이야기되는 그 ‘한국’은 대체 누구에게, 무엇인가? 어떤 이들은 당시 ‘비하’된 ‘한국’이 기실 10대 후반의 한 소년을 둘러싸고 있던 작은 세계였음을 읽어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때의 ‘한국’을 무조건적으로 사회역사적 실체로서의 ‘대한민국’으로 등치시킨다. 맥락상 누군가가 처한 특정한 ‘상황’에 대한 묘사가, ‘한국’이라는 실체로 오인(mis/interpretation)된다. 왜 당시 그가 그렇게 이야기하게 되었는지의 맥락은 더 이상 중요치 않게 된다. 마찬가지로, 왜 ‘한국’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되지 않는다. 다시 이 ‘한국’은 ‘나’와 직접적인 연결관계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 스타가 불평을 토로한 특정한 맥락으로서의 ‘한국’이라는 기표는 어느새 무수한 익명의 ‘나’(들)과 ‘한국’이라는 사회역사적 실체의 연결고리 속에 놓인다. ‘나’를 지키는 것이 생존본능처럼 당연하듯, 모욕당한 ‘한국’을 지키는 일 역시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다.

 

“I'll be back (to the U.S.)”: Entertainer? Migrant Worker?

 

“돈을 벌어 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스타의 Myspace 소개글에 대해, “외국인 노동자, 양키 고홈”이라는 온라인 공간의 지배적 대응은, 이렇게 나-한국을 연결한 무수한 사람들이 분노하는 보다 직접적인 맥락을 잘 보여준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엔터테이너인 스타의 처지가 ‘외국인 노동자’로 번역되는 상황에서, ‘내국인’과 ‘외국인’의 분할선이 만들어진다. 이 때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에서 번 돈을 미국으로 빼돌리는”, 즉 ‘국부’를 유출하는 외부인으로 의미화된다. 여기에, 엔터테이너로서 아이돌 스타가 엔터테인먼트 산업 체계 내 구체적으로 ‘돈을 버는’ 행위자로 이해됨으로써, 이들이 주는 즐거움에 가정된 순수성으로 인한 배신감이 더해진다. 물론 이 때 한국에서 ‘3세계’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권 및 인권 착취의 역사는 ‘국부’ 유출에 대한 분노 앞에서 탈각되거나 희화화된다.

하지만, 정말 그가 ‘외국인 노동자’라면, 열악한 인권 상황의 한국에서 “한국인이 싫다(I hate Koreans)”라는 말이 더 사실감있게 다가오지 않는가? 또한 그러한 외침은 열악한 노동상황에 대한 고발이거나 호소로 이해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지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체계의 ‘노동자’이며, 싫어도 싫다고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맥락에 놓여 있다. 그가 한국보다 ‘선진국’인 미국 출신이라는 점 역시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가로막는다. 이러한 논리의 저변에 흐르는, 한국보다 열악한 경제상황의 ‘3세계’ 출신만이 ‘한국’에 대해 불평과 불만을 토로해도 괜찮다는 인식은 ‘한국’에 대한 발화 자체가 매우 위계화된 국가관계 하에서 가늠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외국인 노동자’가 될 수 없는 까닭이 하나 더 있다면, 그가 ‘미국인’이라는 국적(nationality)과 무관하게 한국사회에서 인종적으로 온전히 ‘외국인’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몸은 한국인인데, 생각은 미국인”이라는 대중적 표현이 보여주는 것은, 재미교포라는 그의 출신배경이 한국사회에서 갖는 ‘어떤’ 종류의 타자성이다. (물론, 이 타자성에는 일정한 ‘특권’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섞인 것일 수도 있다.) ‘한국인’이 ‘한국’에 대해 탄식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허용가능한 일이지만, (한국에서 돈을 버는) ‘한국인’이 아닌 사람이 개인적 경험을 ‘한국’에 투사해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응징’되어 마땅한 일이 된다. 그러나, 그가 만일 온전한 ‘미국인’이었다면 지금처럼 온라인 공간이 들끓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예 ‘외부인’이라면 ‘한국’이 (혹은 ‘한국’으로서) 개입할 지점도 적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몸은 한국인인데, 생각은 미국인”인 사람이다.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절대로 ‘순수한 피(true blood)’가 될 수 없지만, ‘한국인’만큼 ‘한국(인)’에 대해 잘 알고 존중할 것을 요청받는다.

 

"Korea is gay": Gender/Sexuality politics at the post/colonial system (of pop culture) in Korea

 

온라인 공간의 분노가 ‘모욕’의 출처로 지목하는 “한국이 싫다(Korea is gay)”는 표현과, 여기에서 'gay'라는 표현을 둘러싼 해석과 논쟁은, 앞서 ‘나’를 ‘한국’과 동일시한 사람들이 느꼈을 ‘모욕’의 핵심을 보여준다. ‘싫다’라는 관용적 해석을 넘어 ‘문자 그대로(literally)’ 호모섹슈얼화(homosexualized)되고 여성화(feminized)된 방식으로 ‘모욕당한’ 것으로 이해되는 ‘한국’은, 한국과 미국이 역사적으로 맺어 온 위계적인 국가 간 권력관계가 투사되는 기표이자 공간이 된다.

저 발화의 주체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점은 이 권력관계를 보다 명확히 드러낸다. 남성화된 미국과 여성화된 한국의 관계를 상기시기는 ‘gay'라는 표현에 대한 분노는, 해방 이후 한국에 정치적, 문화적 준거로 작동해 오며 국가로서 ’한국‘의 남성성을 거세해 온 미국의 존재에 대한 후기 식민사회 식민지인(남성)의 불안의 징후이다. “내가 랩을 못 하는데 잘 하는 줄 안다(eveyone thinks i'm like illest rapper wen i suck nuts at rappin)”는 말은, 해방 이후 미8군기지를 경유해 태동한 락와 팝에서부터, 이태원을 중심으로 성장한 테크노와 힙합에 이르기까지 한국 대중문화(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온 미국 대중문화와 한국 대중문화가 갖고 있는 원본성(authenticity)의 문제와 식민적 구조를 건드리고 있기에 더욱 더 비난받고 있는 것이다.

그 스타가 ‘한국인’ 혹은 ‘미국인’ 혹은 ‘한국계 미국인’이어서 팬이 된 적은 없었던, 그러나 어느 순간 ‘양키’가 된 스타의 (여성화된) 팬덤은 스타를 ‘옹호’함으로써 ‘정신나간 빠순이’가 될 것인지, 스타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고 그를 ‘비판/비난’함으로써 ‘한국인’이 될지 사이에서의 선택을 요구받는다. 어느 순간 바뀌어 있는 스타의 사회적 국적으로 인해 팬덤의 애정은 심문에 놓인다. 온라인 공간에서 이 심문을 주도하는 이들은, ‘한국’에 ‘양키’ 혹은 ‘외국인 노동자’로 표상되는 ‘외부’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비윤리적 존재들이거나, 존재한다고 해도 ‘한국(인)’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거나 ‘한국(인)’을 존경하는 ― 발화하지 않는(unspeakable) 존재여야 한다는 규범을 실천한다.

 

Questioning nation, nationality, nationalism

 

민족주의를 “현실에 대한 사유와 실천을 구성하고 생산하는 현실 규정력을 지닌 담론”(임지현, 2002: 183)이자 역사적 운동으로 이해한다면, 최근 한 아이돌 스타의 ‘한국’ ‘모욕’ 사건은 민족주의가 한국사회에서 작동하는 방식과 그 효과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법적 기준에서 범죄보다 더 큰 범죄로 사건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나-한국을 동일시하는 수많은 이들은, 결코 이 사건을 관류하는 민족주의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대응이 결코 민족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정상적’이고 ‘당연한 것(taken-for-grantedness)'이라는 강변이야말로 민족주의의 작용방식을 드러낸다.

이러한 대중적 반응은 ‘민족’을 언급하지 않으면 민족주의가 아니라는 인식론적 태도를 보이는, 그렇기에 민족주의에서의 ‘민족’이 ‘한국’으로 전이된 상황을 간과하는 이영훈(2004)의 (뉴라이트적) 입장에 가깝다. 자신들의 분노를 정당화하는 모습에서는 긍정적이고 ‘저항적’ 민족주의와 부정적인 제국주의적 민족주의를 구분하며 전자를 정당화하는 신용하(2006)의 입장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을 ‘모욕’하는 글이 쓰여진 과거를 용서하자는 데 대해 “그럼 일제 식민지도 그냥 과거냐”고 공격적으로 되묻는 이들에게, ‘역사’가 갖는 일그러진 시간성은 단지 (신)보수주의로 이해하기에는 기묘하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제안되는 성찰들에서 보여지는 “(이런 상황을 보니) 한국이 진짜 싫어진다”는 말에서의 ‘한국’은 앞서 ‘모욕’된 ‘한국’과 얼마나 같으며 또 다른가? 여전히 ‘한국’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중요하다.

신진욱(2009년 8월 27일)의 지적이 의미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서다. 87년 이후 형성된 ‘민주공화국 시민 정체성’은 애국주의(민족주의)와 국면적으로 결합한다는 그의 주장은, 민족주의 내부의 서로 다른 결들이 어떻게 헤어지고 결합하는지를 사고하게 한다. 그는 본질적인 ‘민족’ 개념이 아니라, 정치공동체이자 현재의 (잠정적) 삶의 무대로서 ‘대한민국’을 ‘집(home)'으로 맥락화하고 개념화했다는 점에서 ’한국‘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또한 현재를 고려하며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인식론적 전환을 제공한다. 이는 (탈식민) 페미니스트들인 Butler(1990)가 제안한 “연합의 정치학”(111), Mohanty(2003/2005)가 제시한 “함께 일하고 함께 투쟁하기를 선택한 사람들 간의 공동체”(22)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을 끊임없이 (재)구성해 나가야 할 정치적 공동체이자 삶의 무대로 이해하는 것은, 이 사건을 둘러싼 민족주의적 대응에 대한 ’나‘의 분노를 특정한 누군가를 향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삶의 무대로서의 ’한국‘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의 표현으로 전화할 수 있게 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 사건이 한 ‘한국계 미국인’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방향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집단적인 ‘한국(인)’ 정체성 만들기와 민족주의, ‘진정한 국가(true nation)'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늘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나, 제국과 식민지, 진보와 보수가 맺고있는 인식론적인 “적대적 공범관계”(임지현, 2004: 26)로서 민족주의를 심문하는 임지현의 비판은 여전히 의미있음에도, 그것이 누구에게 왜 어떻게 문제인지, 즉 어떤 권력이 무엇에 어떻게 작동하며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고 할 때, 신진욱(2009년 8월 27일) 역시도 간과하고 있는 87년 이후 새롭게 형성된 시민 정체성이 여전히 특정한 국면에서 왜 민족주의와 강력하게 결탁하며, 또한 그것이 발휘하는 효과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앞으로 국가(nation), 국적(nationality), 민족주의(nationalism)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지점이다. 이는 민족주의는 어떻게 젠더화, 섹슈얼화, 인종화된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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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어제 썼다. 하루가 지났고, 상황은 '많이' 변했으며, 지적하고자 한 상황은 더 극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아프지만, 달아날 곳은 없(어야 한)다. 

토요일, 9월 05, 2009

월요일, 8월 31, 2009

from "역사(力士)", [무진기행] by 김승옥(1963).

빈민가의 저녁은 소란하기만 하다. 취해서 돌아온 사내는, 기부운, 하고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고 자기가 번 그날의 품삯을 내보이며 친구들을 끌고 술집으로 간다. 그러면 그 뒤로 그 사내의 아낙이 쫓아와서 사내의 손에서 돈을 빼앗아 쥐고 주먹을 휘둘러 보이며 집 안으로 사라지고 그러면 뒤에 남은 사람들은 싱글싱글 웃으며 노해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그 사내를 달랜다. 빈민가 가까이 있는 시장에서 생선의 비린 냄새가 물씬물씬 풍겨오고 도시의 중심부에서 바람에 불어온 먼지가 내려앉고 여기저기의 노점에 가물가물 카바이트 불이 켜지는 시각이 되면 사내들은 마치 그것들을 피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자기들의 키보다 낮은 술집으로 몰려든다. 

나도 그곳에 하숙을 정하고 나서부터 매일 저녁때면 술집으로 걸어갔다. 흙탕물 속의 기포처럼 그 어수선한 마을에서 술집들만은 맑고 조용했다. 물론 사내들은 떠들며 얘기하고 혹은 코피를 흘리며 싸움을 하곤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거리에서가 아니라 술집 안에서 일어나는 경우엔 왜 그렇게 맑은 것으로 보이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98-99)

화요일, 8월 25, 2009

고백하지 않건대,

지하철이 치덕치덕 달려 강을 넘을 때, 우연찮게도 지평선을 넘던 해를 본 적이 있다. 아니, 내가 본 것은 해의 불그죽죽한 잔영이었다. 물결인지 아지랑인지 햇살인지 가늠할 수 없던, 만지면 부서질 듯이 아스라한 느낌의 그 무엇-들. 무엇을 믿어야 할는지, 무엇을 믿을 수 있을지를 물끄러미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터널의 잿빛 어둠이 시선을 덮친다. 무섭게 치던 빗줄기가 잦아드는 때의 적막처럼, 시야가 고요해진다. 시간이 사라진다. 나는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다, 1호선 어딘가에서 내렸다. 아니, 6호선 어느 역사였던가. 시간의 언저리에 자리한 낯선 대학가를, 강을 끼고 도는 살풍경한 도심을 걸었다. 안으로 걸을수록 동심원의 밖으로 밀려난다. 손등으로 땀을 훔쳐내고서도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아니,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고 여겼다. 

무엇을 애정할까, 무엇을 아껴마지 않아야 할는지, 마음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문서와 글자가 무슨 소용을 갖는지 마뜩찮다. 정교한 계획도, 치밀한 준비도 아득한 수렁으로 굴러 떨어지기 안성맞춤인 게다. 좌표를 결정하는 것은 다른 데 있었고, 나는 그것을 유예함으로써 두려움을 감출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마주 앉은 이의 목소리들은 표정없는 글자로 애써 탈바꿈을 시도한다. 우걱우걱, 나는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을 씹는다. 그것은 신음하거나 비명하지도 않고 고분히, 그러나 원망하는 듯 입술을 비죽일 따름이다. 꿀꺽, 입가에 뜨뜻한 바람이 끼친다. 계절이 변하는 소리일지도 몰랐다. 대면한다 해서 달라질까. 적어도 손등의 축축한 소금기는 줄겠지, 하지만 그뿐일 게다. 시간을 놓친 열차표가 무용하듯, 타이밍을 놓친 대면 역시 변명이 되기 십상이다. 나는 눈빛이 흔들리지 않으려 애를 쓴다. 

취기에 관대해지는 밤이 있듯, 초라함과 치졸함과, 부박함을 천연덕스레 두기로 한다. 모범생의 안전에 대한 감각이 그리 쉽게 변할쏘냐, 하며. 서울은 언제나 공사 중이었고, 담뱃내는 찾을 빚이 있는 혼백처럼 뒤를 따라 붙었다. 나는 한 번도 천사를 만난 적이 없다. 버스가 집 앞 정거장에 닿을 때, 밤이 무섭도록 체중을 늘려가는 소리를 듣는다. 

월요일, 8월 03, 2009

토요일, 7월 18, 2009

수요일, 7월 08, 2009

여행기.

며칠만에 나의 방이 낯설어진다. 창이 작은 방에는 햇살에 뭉개지고 일그러질 형상들도 서리지 않는다. 몇 주간 쌓인 두터운 먼지들을 훔치며, 그 자리에 왜인지 절박한 심정으로 땀을 뚝 뚝 내려놓았다. 세상에 없는 말들을 다 쓴 치약을 짜내듯 기합을 넣어 토하고, 말이 말을 집어 삼키고, 말과 말이 충돌해 사라지는 초라한 마술의 시간이 지난 탓일까. 차고 빈 것들이 분간이 가지 않는 진지전을 예비하는 마음으로, 설거지만을 남겨 둔다. 아, 아직 옷장으로 향하지 않은 여행용 옷가지들도. 세탁기 위엔 빗방울에 흠씬 두들겨맞은 가스 고지서가 너덜너덜한 채로 놓여 있다. 그젯밤 라디오에서는 예일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 스물 두 살 여자아이의 고민상담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녀는 압구정에 있고,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며 미래를 걱정하는 중이었다. 영어로 말하는 사람들의 나이를 도통 짐작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고지서에 쓰인 짐작하기 어려운 숫자들을 해독하느라 골몰했다.

38도를 넘나드는 혹서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했으므로, 제각기 다른 인간 군상들은 쉴 틈 없이 젓가락질을 해댔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접시들은 풍요롭다 못해 스산했다. 토악질 나는 땀내를 풍기는 사내들은 서경이며 북경이며 동경이며를 가리지 않고 출몰했으므로, 나는 도통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값비싼 음식과 싸구려 농담은 놀랍게도 조화로웠기에, 그 뻔한 조화를 안주삼아 뜨뜻한 맥주와 싸구려 커피를 잔뜩 들이키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고, 나는 무척이나 분했다. 하염없이 자는 동안에는 엄마가 쪼그라드는 꿈을 꾼다. 엉엉 울다가 일어나도 베갯잇은 비현실적으로 하얬고, 아침부터 싸구려 농담은 볕처럼 지칠 줄을 몰랐다. 차라리 이국어로 지껄이는 순간은 엉거주춤하게나마 자유로웠으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안주를 시키는 법을 연마했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그 모든 것들을 싸잡아 잊어 버렸다.

나는 이국에서 몇 차례고 고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여자에 대해 떠올렸다. 이미지가 전부인 남자들에 열광하며 끊임없이 지갑을 열고, 다른 여자들과 입이 부르트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을 그 여자의 고향과 기원. 나는 한 번도 나의 고향에 대해 물은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알았다. 삶의 치부에 대한 새파란 고해 없이 고향을 말할 수 있는 법은 없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가장 주변에 있던 그네들이 내게 고향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나는 홀연히 네트의 바다로 사라진 그녀를 찾아 승인받고 싶었다. 캐리어는 한동안 대문 밖에 놓여 있었고, 나는 샤워를 하다 말고 벗은 몸으로 캐리어를 문 안으로 들인다. 허락없이도 작동하는 어떤 시간과 공간을, 청소도 해독도 어려운 언어들을, 나는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것들은 너무 많은 눈을 가졌다. 피로하다.

화요일, 6월 30, 2009

from "빈 찻잔 놓기",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 by 권여선(2009).

강은 보이지 않지만 어둠 속에서 느릿느릿 흘러가고 있었다. 높은 오피스텔 건물의 마천루 조명이 강 위에 흐릿하게 반사되었다. 흔들리는 빛 속에서 강이 잠깐씩 흐르는 물결의 속살을 드러냈다. 반사된 빛이 반사하는 물의 흐름을 알려주듯 그녀에게서 부딪쳐 튕겨나간 존재들이 그녀 내부의 진상을 드러내주었는지도 모른다. (...) (92)

그녀는 술잔을 내려놓고 훌쩍 일어나 통유리 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 강이 있을 터였다. 강은 보이지 않았지만 강을 둘러싸고 흐르는 강변도로 차량의 불빛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 흐름을 보고 있자니 격했던 감정이 조용히 흐르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언젠가는 이 딱딱한 앙금도 순해지고 퇴색되고 부드럽게 발효하리라. 오래전 그도 이런 마음으로 불숙 일어나 베란다로 갔던 것인가. 단단한 불신과 의혹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채 하염없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유리 밖 어두운 공간을 바라보았던 것일까.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마치 언젠가 그녀 자신이 자신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던 것만 같은 달콤한 기시감이 강물처럼 그녀의 가슴에 밀려들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했던 말은, 제 존재 자체가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였다. (9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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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르지도, 차오르지도 않으며 관계에 대해 쓰는 작가다. 섬찟하다.

일요일, 6월 28, 2009

밑줄.

이탈리아에 있는 건물을, 자기 얼굴도 모를 남자를 이유로 팔았다는 여자의 이야기는 어딘지 짠한 데가 있었다. 여자는 복잡한 자기 삶을 단순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마치 우리가 텍스트에 밑줄을 치는 것처럼. 때로 핵심도 아닐, 뜬금없는 문장에 밑줄을 치고 싶을 때가 있지 않던가. 굳게 동그라미로 단어를 포획하고 싶은 때가. 텍스트와 벌이는 이 보잘 것 없는 쟁투에는 역시 핵심이 없다. 나는 무엇의, 누구의 텍스트도 아닐 것인 까닭이다. 뒷덜미의 통증이 식지 않고 남아 으르렁댄다. 밑줄로 붙들어매고픈 욕망들은 제 갈 길을 몰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주치는 법도 없었다. 기적은 그래서 태고적으로부터 기적이라 명명된 것이고, 거적때기같은 밑줄들만이 남아 도시를 얼룩덜룩 메우고 있다. 잉여를 욕망하는 법을 배우고부터 삶은 혼란으로 다시 쓰여졌다.

토요일, 6월 27, 2009

patrick watson(2007), the great escape.




directed by cathleen weldan and alex produkt

화요일, 6월 23, 2009

local natives(2009), airplanes.




edited by william robinette

bowerbirds(2007), in our talons.



토요일, 6월 20, 2009

"Angry Dance" from "Billy Elliot the Musical" in Tony Awards 2009.




performed by Trend Kowalik

화요일, 6월 16, 2009

감기와 불면증.

얕은 감기기운은 지독한 불면증과 나란히 방문했다. 일자로 뻗은 배암들이 천장에, 바닥에 자리잡은 꿈을 꾼다. 세계는 왠지 불쏘시개로 헤집어놓은 듯한 모양이다. 끙끙대며 잠을 청하다 눈을 뜨면 방안이 소독차가 지나간 마냥 자욱하다. 자욱한 새벽 네 시, 혹은 다섯 시. 고름이 굳듯 머릿속의 아우성들도 멎는 시간이다. 고향과 엄마에 대해 생각한다. 전략적 선택이 가능하다고 믿는 만큼이나, 재현은 언제나 불가능하다. 나는 감출 곳 없는 몸뚱아리를 무대장막같은 이불 속으로 숨기려 애쓴다. 매끈한 봉합마저도 불가하다면, 방안에 볕이 들기를 기다리는 일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주에 한 번 대형마트에 가서 장을 본다. 내가 사는 품목들은 정해져 있다. 이 리터짜리 오렌지 주스 한 병, 포도 주스 한 병, 요거트 한 팩, 두유 한 팩, 시리얼 한 봉지, 신라면 한 묶음, 계란 반 판, 소시지 둘. 훤히 아는 매대를 우물쭈물거리며 기웃거려도, 차고 마르고 얼려진 것들 외에는 없다. 따스함은 구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게다. 카드기가 계산을 완료하자마자 다음 손님을 받기 위해 나는 밀어내어진다. 허둥지둥 봉지에 산 것들을 주워 담고서, 시장이 시작되는 장소에 초라한 모습으로 선다. 나는 그 날 혼자 만두 한 접시와 자장면 한 그릇을 사 먹었다.

쓰러져도 누구도 일으켜주지 않는 곳이라는 한 그녀의 말을 나는 종종 기억했다. 살아남기, 라는 송곳같은 말이 아무렇지 않게 던져지는 순간에 어찌 생존을 비명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고. 잠깐의 침묵이 단조로운 패턴처럼 기입될 때, 나를 태운 차는 수 년 전의 어떤 차처럼 매끄러운 곡선을 그리며 고가도로로 진입한다. 이십 대가 깜짝할 새에 지나버린 기분이다. 애초에 잃어버린 것이 없었음에도 꾸역꾸역 치밀어 오르는 상실감을 게워낼 도리가 없다. 살겠다고 자각하는 순간이, 살았던 순간에 포르말린이 칠해지는 순간이며, 이야기가 탄력을 잃어버리는 순간이다. 나만을 믿기로 하는 때에, 실은 그 내가 가장 약한 고리임이 밝혀진다.

이제 아찔한 기적을 기다리는 일은 없을 게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굳게 믿고 뒤로 넘어지는 일도. 운동화 끈을 두 번 걸어 매듯, 불면을 마주한다.

토요일, 5월 23, 2009

애도하지 않아야 할 것.

늘 그렇듯, 습도가 80%를 넘는 찌뿌드한 아침이었다. 마음먹었던 리딩보다는 뉴스 브리핑이 먼저라는 핑계로 클릭한 웹에서는 수상쩍은 글들이 가득이었다. 쉬이 정신이 들지 않았고, 마음이 적잖이 먹먹해졌으며 유달리 좁은 창으로 들어오는 채도도 낮았다. 어쨌거나 복장을 차리고 집을 나서야 한다. 허겁지겁 올라탄 마을버스에서는 계속해서 뉴스가 흘러 나왔다. 죽음을 판정하는 병원장의 말과, 기자의 다급하고 정갈한 보도와, 외신 보도에 대한 친절한 요약과, 망자의 생애에 대한 브리핑까지, 모든 것이 마치 준비된 것처럼 착착착 내놓아졌다. 귀는 적잖이 언짢았다. 혹은, 아파트 단지 사이를 누비는 버스 안에서 보는 세계가 참으로 살풍경했던 탓일는지도 모른다. 어떤 승객은 오늘의 뉴스 아닌 어제의 뉴스가 실린 신문의 경제면을 정독했고, 한 아이는 대낮의 즐겁지 않은 라디오 방송에 엄마를 보챘다. 지하철역에 도착하기까지는 평소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하철 역에서 휴대폰으로 정신없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젊은이들을 보았고, 엉겹결에 나도 그 중 하나가 된다. 문득 파란색의 텃밭이었던 동네에서 엄마를 설득해 노란 물결을 찍게끔 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바로 그 사람을 대학시절 줄곧 투쟁과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몇 번의 노동절들과 집회들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자연인 노무현을 둘러싼, 정치의 진실 혹은 이미지라는 허구적인 대립항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노무현의 것들이랄 수 없는, 노무현이라는 이름에 투여되었던 각축하는 의미들, 혹은 꿈들에 보다 관심이 있다. 아니, 그러한 관심이 생겼다. 누군가의 죽음이 이러한 관심의 생산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 참으로 역설적이라고 생각했을 때, 지하철은 한강을 지나는 참이었다. 386이라는 코호트적 실체가 존재한다면, 그 꿈이 한강에 투신한 것일는지. 민주주의가 5년에 한 번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으로만 이해되는 나라에서, 그 무수한 투표 쪼가리들에 기입된 동그라미들에 투사되었던 꿈들이 한강둔치에 쓸리듯 떠올랐던 겐가.

말로만 듣던 호외가 돌았다. 누군가는 죽음의 동등하지 못한 값어치에 대해서, 주목없이 죽어간 노동자, 농민, 철거민들에 대해서, 또 누군가는 사망인가 서거인가를 두고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무책임하고 나약한 죽음이라며 울분 혹은 비아냥을, 또 누군가는 추모와 애도의 꽃을 던진다. 어떤 이들은 광장으로 모이자고 했고, 그들 이전에 전투복을 갖춘 사내들은 앞서 모여 있다. 확산되는 것이 무엇일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엇에 대한 울분, 무엇을 향한 애도일는지도 명확하지가 않다. 어떤 갑갑함과 울컥함과, 슬픔의 정체에 대해 우리는 잘 모른다. 우리는 무엇에 대해 애도하고, 또 무엇을 애도하지 않고 있는가. 애도를 통해 떠나보내야 할 것과 여전히 붙들고 씨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우울증적으로 앓을 것이며 무엇을 전선에 세워야 하는지에 대해 더 말해야 한다. 어쩌면 애도를 통해 다 흘려버리지 말아야 할 어떤 것들이 있다. 쉽사리 향을 피워 애도하지 않아야 할, 어떤 계기들이 있다. 하나의 죽음은, 심지어 망자가 생전 딛었던 걸음들 사이에서 죽어간 또 다른 죽음들과 어떠한 접점에서 만난다. 괴이쩍기 짝이 없는 그 접점이, 비일관적이고 또 신뢰하기 힘든 이 슬픔의 확산에 대한 발화의 시작점이 되어야 할는지도 모른다.

층층이도 굴곡진 현대사는 한국 국민들에게 집단 망각이라는 방어 기제를 학습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떤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계기나 국면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그러한 집단적 망각의 상태로 '우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이름으로 그 실체를 끊임없이 취약하게 만들어 온 망각의 역사 그 자체에 대해 물을 때에서부터 가능할 것이라는 오래된 이야기도. 검은 양복을 입은 애도와 추모는, 다른 수많은 촛불과 노래들이 그러했듯 곧 사그러들고 망각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싸우고 또 만들어가야 할 것들이 애도와 추모가 꺼진 자리에 있다. 자연인 노무현의 죽음이 환기시키는, 짧은 현대사와 정치와 민주주의 따위의, 기실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낯설고도 민망스러운, 그럼에도 탐스러운 그 어떤 꿈같은 것들에 대해서만은 꽃을 던지지 않아야 할는지도 모른다. 망각의 반댓말은 애도가 아닐 것이다.

화요일, 5월 19, 2009

일요일, 5월 17, 2009

화요일, 5월 05, 2009

기억의 경제학.

***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 계절이다. 비좁지 않은 방이건만, 유난히 볕이 드는 틈은 좁기만 하다. 습도계는 때때로 표시한도를 넘어 HI, 하고 깜박거린다. 이름모를 날벌레들이 소리없는 분란을 일으키며 인사를 해 온다. 나는 한동안 난폭한 학살자가 되었다가, 제풀에 지쳐 그네들이 공기 중을 점령하게 두고 침대에 둥우리를 틀었다. 책상은 외려 잡동사니들이 무섭도록 쌓인 창고가 되고, 자그마한 의자는 탁상이 되어, 침대는 왼갖 자료들이 산란스레 펼쳐진다. 때때로 빳빳한 종잇장들이 몸 아래서 구겨지지 않게 조심하며 고개를 베개에 파묻는다. 자연스러운 어둠이 좋은 유일한 때다. 허나 눈을 뜨면 밀도높은 공기가 날벌레들처럼 귓속으로 날아드는 것 같다.

***

열 살 무렵에 좋아했던 연작소설이 있었다. 무엇이건 목록을 만드는 걸 취미삼던 소녀의 이야기였는데, 그 목록이란 대체로 하잘 것 없어 보이지만 막상 당사자에게는 퍽 흥미롭고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 즈음부터 나도 무수한 목록들을 만들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더랬다. 어디서 굴러 들어온지 모를, 인조가죽 표지에 천구백구십 어쩌고 하는 숫자가 금색으로 박혀 있었던 회사원용 다이어리에 내가 기록했던 것은, 이를테면 만화영화 주제가의 가사라든지 아니면 만화의 명대사들이었다. 글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번이고 지우고 고쳐 쓴 그 다이어리의 앞 몇 장이 너덜너덜해질 즈음, 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글자가 아니라 그 기록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다이어리와 함께 일기장 몇 세트도 다시 꺼내보지 않을 독한 결심과 함께 책장 어느 안쪽에 파묻혔다. 영락없이 비좁았던, 허나 어슴푸레하게 반짝이던 것들로 빼곡했던 취향의 창고는 굳게 닫혔다.

그 때 걸었던 빗장이 만화와 같이 재현된 것들에 대해서였는지, 혹은 재현된 것들을 내가 어줍잖게 재현한다는 것에 대해서였는지, 아니면 재현된 것들로 기워진 아이다운 우주 그 자체에 대해서였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 무렵 나는 TV가 아닌 현실이 주는 통각들을 하나하나 앓고 있었고, 아픔에 닿은 어른들의 세계를 탐내던 참이었다. 이를테면 여름밤을 메운 모기들을 한 손으로 움켜잡는다거나, 낚시를 간다든가, 비가 쏟아지는 날의 드라이브, 아니면 늦은 밤의 배웅 같은 것들. 철없음은 늘 철들어 보이는 이들의 세계와 대별되어 만들어졌고, 나는 잘 다려진 셔츠처럼 말쑥한 모양새로 어른들의 세계에 하이, 하고 안착하고 싶었던 게다. 차를 타고 종종 넘던 학교 근처 교외로 나가던 어느 고개를 넘을 적에, 아주 약간 사뿐히 떠오르는 느낌과 차창에서 흔들리던, 바이올린을 켜고 있던 사기 인형을 기억한다. 나는 비가 새는 방과 뒤틀어진 마루와 더러운 커튼을 미워하며 어른됨을 사랑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어쩌면 철없는 세계는 비루한 소년의 취향이 아니라 노란 장판에 덧대어진 남루함이었는지도 모른다.

***

내가 탐냈던 어른됨은 세계를 식별하고 분별하는 법, 이었던 것도 같다. 그것은 목록을 만드는 법을 바꾸는 일이기도 했다. 무엇을 해선 안 되는지를 기준으로, 사랑하는 것들의 목록 대신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만드는 것. 나는 들끓던 욕망을 침착하게 해서는 안 될 것과 해야 하는 것으로 분류하고, 다시 후자를 할 수 없는 것과 있는 것으로 나누어 마지막 것들만을 몫으로 남기는 법을 배웠다. 그것은 내게 주어진 몫이자, 내가 가질 수 있었던 최대한의 몫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배운 바에 따르면 희생이라는 말은 명백한 오버다. 지금 가진 것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뭔가를 버려야만 했다. 버린 것들의 값어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 그래서 과거를 반추하는 일은 대체로 비생산적인 일이라고 배웠다. 과거는 언제나 선택되지 못한 가능성의 항들이 질겅이며 바짓가랑을 붙들어 매는, 정체와 이물감으로 가득한, 철없는 소년의 창고일 뿐이라고 말이다. 기억에 대한 경제학은 기억을 기억하지 않는 경제학이며, 그것이 곧 생과 성공에 대한 경제학이라고, 말이다.

***

오월의 비라고 해서 퍽 새로울 것은 없다. 으레 하는 행사를 치르듯, 다 잘 될 거라는 말을 주억거리는 것 외에 내가 내놓을 것이 무에 있었단 말인가. 추의 진폭이 점차 잦아들듯, 감정은 절정으로 치닫기보다 둔중하게 가라앉아 식어내린다. 파국은 언제나 지연되며, 현실의 존속과 통합된 존재여야 할 나에 대한 믿음 역시 위태롭게나마 보장된다.

나는 하릴없이 체한 듯 막힌 차도 위에 오래 놓여 있었다. 어제까지 멀쩡했던 정거장 하나가 철거되고 임시로 마련된 자리에 표지판이 장승처럼 버티고 선 꼴이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옆을 지나간다. 도로를 면한 한강은 물결이 잘아 그런지 비현실적인 모양을 하고 있다. 사실, 굳이 현실적인 것을 찾자면 요란하게 바닥을 파헤치는 포크레인의 기합과, 옆 좌석에서 수상쩍게 휴대폰을 열었다 닫는 헐렁한 셔츠의 사내뿐이다. 굴곡진 길을 따라 버스가 몸을 기울이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도로는, 흡사 거대한 분쇄기가 고철들을 하나하나씩 짜부러뜨리는 장면에서 소리만 제거된 듯 고요하고 엄혹하다.

유달리 기다리는 버스가 느리게 온 탓이다. 대신 집어 탄 버스는 짓궂게도 가까운 길을 굽이굽이 돌아갔다. 깡통으로 무장한 시커먼 사내들이 어떤 길목인가를 막아선 모습에 이어, 가엾은 천조각들을 날리며 육교 위를 달리는 이들이 시간을 분절시킨다. 오래 묵은 피로가 사슬처럼 발목을 붙들어 매는 동안 차체는 먹잇감을 노려보는 맹수마냥 슬금슬금 자리를 옮겼다. 농밀한 음담보다 더 껄끄러웠던 시간들은 이제 농담이 되어 용맹히 귀환하곤 했고, 나는 버스의 무거운 궁둥짝을 욕하며 그 피로들을 빚독촉처럼 감당하면 그만이었다. 과거가 그을린 피부껍질처럼 벗겨져 나가고, 시뻘건 맨살은 종종 괴괴한 비명을 토해낸다. 기억하려 애쓸수록, 기억하고자 하는 과거도 기억을 시도하는 현재도 불안정해진다. 허나 그 황망감이야말로 기억한다는 행위의 핵심일는지도 모를 일이다.

***

취기가 잔뜩 오른 사내는 멱살을 틀어쥐듯 오늘이 대체 무슨 날인지 아느냐며 음성을 치켜세웠다. 알아요 알아, 하지만 핑계를 대지는 않으렵니다. 다만 특권화된 어떤 현실이 누군가의 현실에는 과거이기도, 미래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탈탈 털어넣어 팔자에 없는 소줏잔을 기울일 따름이다. 경제학에 작별을 고하고 남은 기억들은 여전히 시큰한 것을, 별의별 연놈들이 다 그리운, 별이 보이지 않는 밤이다.

금요일, 4월 24, 2009

일관된 이야기는 불가하다.

무엇을 사랑할 수 있을는지를 모를 날들이 밥풀처럼 묻었다가 떼어내 진다. 정말 배가 고프면 흉흉한 몰골의 뺨에 붙은 밥알까지 떼어 먹을 수 있는 걸까. 귀찮아서 끼니를 거른 적이야 셀 수도 없지만, 배를 곯아 절망한 적은 없다. 불안은 대개 이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데서 왔다. 하잘 것 없는 통장의 잔고며, 냉장고의 계란이며, 휴대전화의 수신함을 메운 바잇, 바잇, 바이트들. 바닥나는 것이 두려워 더 채워넣지 않으면 안 될, 밑 나간 쌀독같은 이 강박의 물신들은 언제고 완고했다. 

사랑할 것이 도무지 없어질 때에 타인의 열정을 볼모삼게 된다. 마치 느슨히 뒤로 묶은 긴 머리의 편안한 곡선처럼, 나에게 없었고 앞으로도 영영 없을 그 어떤 것들에 나는 손쉽게 마음을 내어 놓을 준비를 한다. 부재의 자리들은 아크로바틱과 신디사이저로, 버라이어티와 우스꽝스런 자막들로 채워졌다. 무대에서 소녀들의 환호성을 한 몸에 받으며 정렬된 동작을 취하는 저 매끈한 몸뚱아리들이며, 흐르는 땀들은 마치 열정이라는 기표의 순수한 원형처럼 빛난다. 무엇보다도 더 밝게 빛나지만, 또한 곧 명멸해갈 그런. 허나 내가 취한 열정의 형식은 끝도 없이 어슴푸레하며, 발화인지 침잠인지 소멸인지조차 판단할 수 없을 그런 것은 아닌가. 열정에도 위계가 있을 줄을 틀림없이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열정과 밥벌이와 지식생산과 지식소비가 그렇게 아크로바틱하게 구분되는 것일 수 있던가. 답없는 질문을 무대의 소년들에게 던지는 꼴이 우스워 제풀에 웃는다. 

웃으며 익숙한 길을 오랜만에 걸었다. 말하지도 웃지도 않고 걷는 것은 부당하며 또 해롭다. 걸음걸음마다 부서지고 무너져 나가는 것은 얼마나 파괴적인 일인가 말이다. 헤어진 오랜 옛 기억이 때로 살갗을 파고들듯, 어떤 사회적 사건의 결과 또한 잊을 만하면 돌아와 바짓자락을 적시게 마련인 줄을 그 때에는 몰랐던가. 아니, 결과는 언제나 과정의 연속이며 그 다음 것의 지연으로서만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기억하자. 선택으로부터 이어질 페이지들을 상상치 않았을 리야 없다. 허나 장마가 올 것을 알았다고 해서 옷이 젖지 않는 것이 아닌 것처럼, 결국 감기는 감기다. 감기에는 물음표가 없다. 그 익숙한 길에서 재채기를 할 것만 같았다. 백 번은 걸었을, 그러나 가히 다시 밟고 싶지는 않았던 길이다. 

그래서, 다시 사랑 어쩌고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비틀거리는 버스를 타고 꼭 실수로 한 정거장 일찍 내려 걸어야 하는 그런 마음으로, 허탈하고 피로한 이야기. 나는 숭고한 무엇도 사랑할 무엇도 그것들에 관한 이야기도 믿지 않는 재미없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울음을 글썽이거나 털썩 주저앉을 베짱도 배우지 못한 까닭에, 그저 모래같은 아침 시리얼을 입안에 부스럭대듯, 포스트 어쩌고 하는 글들을 꾸역꾸역 씹어 삼키기로 한다. 이제는 잔고가 없다. 몇 없는 동전들도 안녕이다.

월요일, 4월 20, 2009

화요일, 4월 14, 2009

생존의 문제.

미안하다는 말은 아무런 힘이 없다. 악인은 죽음으로 처벌받거나, 끝끝내 미스테리로 남거나, 스스로 신에게서 죄사함을 구할 따름이다. 미안하다는 말은 애꿎다. 말이며 욕동이며 정향이라는 것들이 다 하나같이 참으로 애꿏었다. 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다섯 살 배기처럼 굴었을는지도 모른다. 윤리가 굴절되고 신뢰가 불가했던 것은 애꿏었던 처음부터 당연했다. 애꿏은 말을 벌레처럼 게워내고, 꼬릴 잘라 살아남은 머리인양, 혹은 머릴 내어주고 꿈틀대는 꼬리인양 기었다. 어느 쪽이건 자기를 지키고 보존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했을 것이다. 고이고 썩고 성마를지언정, 침해당하지 않을 3기니짜리 그 온전한 방이 떨군 낯짝보다 중했을 것이다. 값을 치르고 얻은 것이 없다 말할 수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죽지 않고 살았으니 되었다. 터지지 않았으니 부푼 자리도 가라앉을 게다. 사산아를 묻는 심정으로 무엇도 캐묻지 않고, 심지어 애도조차 않기로 하자, 나의 죽음을 나로써는 애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죽은 아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로 황급히 배를 땅에 대고 기었다. 내가 꼬리인지 머리인지, 묻혔는지 묻는지도 궁금해하지 않고서. 

이렇게 해서 내일을 살아갈 존엄이라는 허울이 바퀴처럼 끈질기게도 살아남는 게다. 

화요일, 3월 31, 2009

맹수와 고양이의 방.

속에 고양이가 한 마리 들어 앉았다. 꼼짝앉고 꼬부랑 글자를 노려보는 일도, 가끔 핥짝거릴 수 있는 무가당 주스와 레토르트 카레가 있으면 괜찮다. 바닥의 먼지는 수시로 훔쳐낼 필요가 있다. 아무도 흙발을 들일 일이 없기에 더 정갈해야 한다고 믿는 까닭이다. 그러나 그 습성이 어디로부터 온 것일는지는 모를 일이다. 방과 책과 스스로가 우주의 전부인 셈에야 아무도 질문을 던지지 않기 때문이며, 공기의 흐름이 멎은 우주에서는 시간과 감정마저도 지루할 만큼 안정적인 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운 적은 없다, 다른 누군가가 혼자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갈하게 톡톡 쳐내듯 털을 깎던 여인이 묻는다. 혼자 계시면 외로우시겠어요, 강아지라도 키우시는 건 어때요. 고양이가 지루한 듯 하품을 하며 입꼬리를 치켜 세워 비웃는 모양이 들여다 보인다. 우린 다들 바빠요, 이 몸뚱아리 하날 건사하는 것도 일이야. 어째 털갈이는 시원찮았다. 

여느 때처럼 사과 여섯 알이 든 봉지를 물고 오는 길은 덜 갈린 먹처럼 머릿속에 잘 스미지 않아 탈이다. 어쩐지 고양이를 본 적이 없는 동네다. 그러므로 동네친구는 불가능한 항이다. 어떤 종류의 강렬한 불능에 선선히 몸을 팔아치운 량으로 시덥잖은 여자가수의 신곡을 흥얼거린다. 어둠 앞에 혼자 서 있었던 적은 없다. 그럴 마음이 들었던 적도. 아스라한 불량식품의 맛처럼, 누구도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욕망을 타고 난 적도 없었거니와, 배운 기억도 없다. 살아남는 법만이 맹수의 숙명처럼 사지의 마디마디에 각인된 것 같다. 어떤 우발적 가해로부터도 달아나고 싶은 맹수의 종착지는 방이다. 감정도 욕망도 버리고서야 친절하고 무능한 고양이로 기지개를 펼 수 있게 된다. 당분간은 모자를 쓸 셈이다. 당분간은 기억도 울음도 열락도 오지 않을 것이다. 

일요일, 3월 29, 2009

miguel arteta(2005), are you the favorite person of anyone?




written by miranda july

금요일, 3월 27, 2009

트래비스와 베이글.

학교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기 딱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내 방에 있는 창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큰 창으로 저물어가는 빛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나는 젖은 생쥐꼴로 잠시, 절벅거렸다. 오래 우려낸 티백을 문 것처럼 쓴 물이 혀끝으로 배어 나온다. 모르는 낯들은 보송보송한 채로 촉촉한 빛살을 만끽하는 듯했다. 와이 더즈 잇 올웨이즈 뤠인 온 미.. 치직, 하고 공간이 포개어 진다. 끊임없이 모호한 말들을 창처럼 던져대는 라디오 채널이 잠시 따스하다. 축축히 젖은 몸을 말린다. 3분 30초,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익숙한 것을 지독히 혐오하던 이가 다시 그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는 과정이야말로 젠장, 가학적인 것이다.

바람이 유난히 많이 부는 날을 기억하는 건, 담뱃불을 위해 라이터를 여러 차례 켜야 하기 때문이다. 칙, 칙, 지독스럽게 녹슨 부싯돌의 흔적이 엄지에 선명하게 남기 때문이다. 지친 사내들이 멈추어 서 낙인같은 그 자국들을 취하는 모습이 객쩍다. 우리는 기억에 대해 강력한 편집권을 행사하는 중이었다. 사건과 감정의 지층들이 치즈처럼 베이글에 녹아든다. 한 시절이 지나가는 것을 목도하는 것은, 한 시절이 지나갔음을 선언하는 것은 그처럼 미지근하고 진득거리는 일인 게다.

월요일, 3월 23, 2009

수요일, 3월 18, 2009

바람부는 날.

바람이 닿은 자리엔 현기증이 인다. 바퀴가 불쑥 솟은 버스 뒷자석은 현기증만큼이나 어지럽고, 동석한 사내는 선풍기 바람처럼 끊임없이 기계에 대고 말을 늘어놓는다. 몽롱해도 잠은 들지 않는 질겅질겅한 피로를 씹으며 본의 아니게 대화를 엿듣는다. 누구의 새로운 연인들이며, 잇몸에 파로돈탁스 어쩌고 하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 저물듯 저물지 않자, 나는 참으로 신기한 화술이라고 생각한다. 둥그스름한 해가 송곳같은 오후의 볕을 쏟아내며 구름인지 지평선인지 사이로 저문다. 사내는 기계에서 입을 떼지 않고 어느 정류장에선가 하차한다. 사내의 낮고 장난스런 목소리가 몇 차례 버스 안을 부유하고, 그제서야 나는 졸음에 빠지기 시작한다. 

바람부는 날에는 라면을 먹어야 한다. 아니, 흐린 날에도, 때론 비오는 날에도, 화창히 맑은 날에도 라면은 적합하기 이를 데 없는 메뉴이다. 언제부터 냉장고에 들어 있었는지 모를 버섯 몇 조각과 김치를 수북이 넣고 전골인지 찌개인지 모를 것을 끓인다. 라면은 언제나 처음이자 끝이었다. 나는 라면을 잘 끓인다. 별스런 재주라기보다는, 그저 바람이 부는 날이기 때문일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혹은 지독한 현기증 탓에 미각을 잃은 까닭일는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떤가. 먹어보지 않은 라면에 대해 품평할 이는 없을 것을. 

말간 콧물을 섞어가며 붉은 액체를 보약처럼 들이킨다. 쓰라리고도 통렬한 감각이 혀의 표면에 돌기처럼 자리잡아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고통을 즐기는 사람이었던가. 궁지에 몰리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고는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것이라는 직감, 혹은 진검승부로도 목이 달아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졸렬한 자신이 얼마간은 있을 때만이다. 이해도, 계산도, 예측도, 통제도 불가능한 고통을 즐기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며 남은 버섯과 국물을 하수구에 따라 버린다. 주차장에 오줌을 지리던 에리카가 떠오른다. 우물우물 입을 헹궈 내면 핏자국같은 고춧가루들이 쏟아져 나온다. 낮도 밤도 아닌 그 어스름한 접경의 시간에 쾌(快)와 고(苦)라는 두 개의 머리가 맞붙은 괴수가 성큼성큼 걸음하는 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보아 온 기분이 든다. 

어느 쪽인지 모를 불안도 몇 차례인지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응어리가 풀어지듯 달아날 것을, 다시 찾아올 그 괴괴한 얼굴들이 별안간 그리워질 것을. 이(齒)를 들여다보는 사내는 왠지 자신의 일부를 어딘가에 두고 온 듯한 표정이다. 바람이 부는 탓이다.

토요일, 3월 14, 2009

수요일, 3월 11, 2009

속수무책의.

독기처럼 무겁게 가라앉는 어떤 것이 먹잇감을 앞에 둔 양서류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렸다. 습격이다. 나는 지독히도 낯을 가리는 아이였다. 나는 공기에 예민하다. 환대와 불신, 무심과 원망을 구분하는 가늘고 구불구불한 선은 언제고 선명하다. 나는 머리를 내어 준다. 덥썩, 안녕하십니까. 그 때부터 시간은 느리게 간다. 상층을 메우고 있던 가벼운 것들은 무엇이었을지. 짓눌려 일그러진 얼굴, 얼굴, 얼굴없는 팔짱, 목덜미, 비명이 촌스럽게 삐죽거렸다. 머리카락이 씹힌다. 아직인가요? 내가 묻는다. 푸르스름한 침으로 범벅이 된 그것은 느긋한 체를 하며 답이 없다. 나는 차라리 줄행랑을 칠 것을, 엉거주춤 그 자리에 섰던 것을 조금 후회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옷을 껴 입어도 발가벗겨진 기분인 탓이다. 외설은, 빗발처럼 들이치기 시작한 봄볕이 찬 데와 따순 데를 가르는 활기찬 캠퍼스가 아니라,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경계는 십칠 분의 시간만큼의 폭이다. 다리가 부들거린다. 음습한 침들이 서서히 스며든 까닭일까. 머리만이 투명하다. 총총총. 이봐요, 같이 가. 나는 낯을 가립니다. 하지만 그건 당신 몫이라는 듯 독기는 느슨한 자취만을 남긴 채 흐트러진다. 나는 투명한 낯을 주억거리며 걷는다. 볼품없는 몸뚱아리 따위야, 어느 강가에 던져버린 대도 개의치 않을 듯이. 십칠 분이다. 십칠 분만이 유효한 안달, 혹은 외설이다. 

일요일, 3월 01, 2009

날카로운, 졸업.

날이 선한 과도의 한 끝이 살갗을 명중하듯 파고들었다. 살갗도 나도 잠시 얼이 빠졌다가, 금세 울컥울컥 차고 올라오는 선홍색 액체에 정신이 든다. 피는 쉬이 멎지 않는다. 사과의 피묻지 않은 자리를 골라 칼집을 낸 뒤 베어 문다. 남의 살을 취하는 데 적당한 값을 치러야 한다면, 밴드 하나로 족하면 좋겠다는 이 욕심. 좁은 밴드가 빼곡히 검붉게 물들고, 과일의 심지가 공기를 그득 머금은 색으로 변할 때까지 그대로 있는다. 밤새 더듬었던 어떤 몽상의 조각들이 울컥울컥 눈멍울을 두드리는 것만 같다.

나는 참을 수 없이 뒤가 마려웠고, 수치스러운 줄을 모른 채 문을 걸어 잠글 수도 없는 자리에서마저 볼 일을 보고만 싶었던 게다. 셀 수 없는 생략과 소실을 지나면 부적절한 입맞춤만이 남는다. 나풀나풀, 그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완강히 떼어내고픈 것만도 아니었다. 나의 볼 일은 결국 입맞춤이었던 겐가, 하고 무거운 눈꺼풀을 떼어내면 어제의 몸살과 급체가 채 가시지 않은 보잘 것 없는 내가 있지 않던가. 고작 한 모금에 털어넣을 가루약과 활명수면 되었을 것을, 미련스레 종일을 앓으며 깨달은 수치스런 욕망은 어느새 고개를 접고 현실의 미지근한 욕망만이 식은 채 남아 있다. 좁은 기숙사 방에서건, 원하는 대로 쓸고 닦아 꾸며 둔 내 공간에서건 시시껍절한 아픔과 외로움 마다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초라하고 쓸쓸한, 과도에 베인 마냥 쌉쌀한 감각을 울컥울컥 맛볼 수밖에 없다는 것. 누군가의 살갗과 보살핌을 파먹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이어야 한단 말인가. 

다만, 기대보다 몇 배는 더 수선스럽고 또 당황했던 졸업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상에 겨운 줄을 뻔히 알았던 졸업사가 자꾸만 이를 채운 보철들 사이로 흘러내려 얼마나 우스웠고, 붙들고 무슨 이야기를 나눌 새도 없이 만나고 헤어진 이들에 대해 얼마나 무력했으며, 정작 기억들이 시퍼렇게 서린 자리들에는 걸음도 하지 못한 채 고작 몇 개월 전 공사가 완공된 낯설고 말끔한 공간에서만 머무는 것이 얼마나 객쩍었는지. 그럼에도 선선히 페어웰을 발음해준 이들에게 나는 얼마나 동지, 혹은 사랑이라는 수줍은 고백을 건네고 싶었던지 말이다. 기억하는 것에 대해 화해로울 수 없다면, 우리가 오기롭게 화해를 시도해야 하는 것은 다시금 그 기억들이 응고되지 않은 채 맞물린, 끈적이고 뒤틀어진 이 현재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점성진 진흙이 가득 묻은 손을 당신들에게 건넨다.

목요일, 2월 12, 2009

이사 II.

힘차게 팔로 고르지 않은 원을 그리며 걸레질을 한다. 먼지들이 시꺼멓게 묻어나듯, 무언가가, 과거의 것도 현재의 것도 아닌 무언가가 밀려나가고 바른 무늬의 장판만 남았다. 피로라기엔 좀 더 둔탁한 것이 머리를 꾹꾹 눌렀고, 나는 걸레질을 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사방의 옅은 라임색 벽지를 본다. 가구가 없는 방은 초라하고, 바닥을 바다처럼 메운 책들의 무덤은 기괴하다. 어떤 영화에서라면, 이 타이밍 쯤 인물은 미처 다 닦지 않은 바닥에 드러누워 잠이 들어야 한다. 허나 현실의, 마이너스 층의 바닥은 꽤 차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가 몸뚱아릴 구겨넣고 살아가는 성냥갑의 크기나 색깔, 질감 따위보다도 성냥을 거칠게 그어 곧 까끌까끌한 한숨을 한 모금 내뱉을 것이라는 잠정적인 미래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하고, 그런 하루, 그런 이틀이 지난다. 

정확히 이사를 이틀 앞둔 날에는, 간질간질하다 기척도 없이 쑥 들어가 버리는 딸꾹질처럼 수상스런 처연함에 주위를 둘러보면 누구라도 폐허라는 단어를 연상할 만한 데 내가 있었다. 다음 날 종일을 쏟아 과거를 비웠다. 처음엔 하나하나 골라 쓰레기통에 담다, 어느새 복도끝으로 직행하는 그것들로부터 나는 나를, 내가 쏟은 집착과 에너지 따위들을 먼지 털듯 탈탈 털어냈다. 가치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판별하는 일은 그토록 흔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피난민의 그것 같은 짐꾸러미들의 우악스러움을 가로질러 방으로 들어오면, 얼룩덜룩한 매트리스와 누덕누덕한 벽지며 가운데가 패인 가엾은 책장까지 온통 쓸쓸함이 담뱃내처럼 스며 있었다. 

고깝잖은 성미로 이사를 한답시고 수선을 떤 것은 참으로 남사스러운 일이라고 여겼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핑계가 그렇듯이, 2인 작업이 필요한 가구 조립에는 낯짝이 두꺼워야 했다. 고맙게도 한 달음에 달려온 그녀와 한참을 뚝딱거리고 나니, 설핏 사람사는 냄새가 끼치는 듯도 하다. 인근에 답지 않게 자리잡은 긴 시장통을 걸으며 무엇을 살까보다는 어떻게 살까를 고민했다. 먹고 사는 일이 이토록 중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의좋은 오뉘처럼 찌개에 숟갈을 밀어 넣으며, 우리는 각자 과거를 파헤치는 일을 나누어 가졌으나, 그럼에도 현재는 언제나 덮고 또 덮으며 지나가는 것임을 알았다. 그것이 훗날 스스로 혹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든 도굴될 것임을 빤히 안다고 해도, 덮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계절처럼 그저 오는 것임을 말이다. 어쩌면 꽤 많은 것들이 그러했다. 그것들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찬 세숫물을 낯짝에 끼얹을 때의 오기이거나 억세게 좋은 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값을 치르고 나선다. 이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수요일, 1월 28, 2009

holidays.

오타가 잦아졌다. 며칠새 9인치 스크린과 키보드에 시각과 촉각이 잔뜩 밀착되어 있었던 탓이다. 내 동공이 투과하는 세계가 이리 작아도 괜찮은가, 하고 생각한다. 며칠이고 신산한 소식만을 전하던 신문을 이제 그만 넣어달라 했다. 좁은 버스 좌석에서 몸을 이리저리 틀어 가며 신문을 펼쳐드는 꼴사나운 사내가 견딜 수 없어진 탓인지, 정치 면에서 사회 면으로 종잇장이 서걱이며 넘어갈 적의 까닭모를 울분과 눈가를 어룽거리던 물기가 흑석동 문턱에서 침몰하고야 말았던 것이 부끄러웠던 탓인지 잘 모르겠다. 뻑뻑히 마른 눈가에도 혹여 곰팡이가 슬까 싶어 제습기를 사 들인다. 이사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감추어 둔 물욕을 한껏 발휘하는 동안에도, 9인치 스크린 너머로 세계는 찰지고 역겨운 이야기들을 한 움큼씩 쏟아냈다. 어쩌면 나는 윤기흐르는 플라스틱 커피포트며 압력밥솥 따위들로 그 역한 내음들을 눈감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오랜만에 손에 쥔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다보면, 나체로 무대를 활보하는 여자들과 십 초만에 지금까지와 앞으로의 이야기를 단박에 알 수 있게 하는 뻔하디 뻔한 주말 드라마의 시어머니와 제각각의 생존을 위해 초원을 달리는 얼룩말과 치타, 그리고 저 동물들과 하등 다를 것 없이 서로의 허물과 외모를 힐난하며 편집되지 않을 것을 호소하는 예능인들이 24인치 상자 안에 어우러져 있었다. 이제 스물 다섯이 된 사내는 트랙터를 몰고 전국일주를 하며 제 나고 자란 고장을 알린다 했다. 요즘같은 시대에 저런 청년이 필요하지, 암, 하고 티비 앞에 앉은 다른 사내가 말한다. 젊은 사내는 시큰둥히 입을 내민 시골 꼬마들에게 희망하고 도전하면 반드시 이루어질 거라는 말을 도끼를 내리찍듯 몇 차례고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트랙터에 태극기를 꽂은 말쑥한 청년은 곧 책을 낼 계획이라 했다. 트랙터가 지나간 자리에 부옇게 남은 먼지들이 이 시대의 살아있는 윤리 교과서에 쓰인 꿈이니 희망이니 도전이니 하는 말들에 가난처럼 따라붙었다. 

옥상에 올라 프랑스로부터 발신된 전화를 받는다. 어릴 적 몸을 밀어넣고 뜨뜻한 물을 채워넣었던 욕조가 비좁아진 것처럼,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던 옥상도 한 걸음, 한 뼘 거리가 된 것만 같아 자박자박 같은 자리를 맴을 돈다. 여기에 있건 저기에 있건 할 수 있는 일도, 할 수 있는 말도 없기가 매한가지였으므로 우리는 죄책감과 한숨과 위로를 제자리걸음을 하듯 나누는 것으로 고해를 바랐다. 배터리가 한 칸 남은 휴대전화를 붙든 손이 얼어 뻣뻣했고, 손을 녹이려 들어간 집 안에서는 찐 생선의 짭조름한 비린내가 봉쥬르, 하고 역력히 혐오스런 인사를 건넸다. 무엇을 혐오할 수 있을까, 혹은 무엇을 사랑할 수 있을까. 촘촘히 목을 조여오는 철거 중인 세계에 대한 원망을 눈깔에 총기를 잃고 포개진 가엾은 쪄진 생선 몇 마리에 쏟아부를 수 있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한들 나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여느 때보다 길었다. 터미널을 메운 이들은 어디에서 와서들 또 어디로 가는지, 그들이 짊어진 보따리마다 구겨넣어진 잘 살라, 건강하라, 혹은 부자되라는 탄식들은 어느 무덤으로 향하는지, 물을 새도 없이 바삐 걸음을 움직이면 일 년에 세 번 무덤이 되는 어둑어둑한 건물촌에 당도한다. 왠지 이런 기분을 다시 맛볼 기회가 또 오지 않을 것을 아는 것처럼, 쓴 입맛을 다시었다. 

월요일, 1월 12, 2009

죽은 새, 스물넷.

가물은 날들이 이어진다. 등이 나간 스탠드 모가지에 젖은 수건을 걸어두는 일은 이제 그만두기로 했다. 떠날 생각을 하니 더욱 더 빌어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깊어지고, 또 떠날 생각에 살았던 곳곳마다 허물을 벗듯 기이한 모습을 내보인다. 걸음걸음이 한없이 정겨웠다가도, 또 뜬금없이 괴상한 공간으로 일그러지기도 하는 것이다. 

오늘은 죽은 새를 보았다. 14동 건물 뒷편, 인문대에서 낙성대 쪽으로 빠지는 삼거리에 닿기 위해서는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그 길목 한복판에 가슴이 열려 붉게 파헤쳐진 비둘기가 잔뜩 얼어 바닥에 붙어 있었다. 온기를 잃은 때를 가늠하기는 어려웠지만, 선명하고 탱탱한 내장들은 냉동창고나 다름없는 바깥 온도를 알려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운데를 피해 돌아갔을까, 하고 생각하며 낯선 헛구역질을 참는다. 까닭모를 죽음을 마주하는 방식은 늘상 그러했던가. 얼마나 많은 까닭모를 죽음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죽음들을 외면했을까. 누군가는 이 가여운 생물의 사체를 거두어야 했을 것이다. 글쎄, 말이다. 

꼽아보기도 객쩍은 새 숫자, 스물넷을 왜인지 모르게 그 새를 떠올리며 차갑게 바싹 마른 공기와 함께 호흡했다. 이제는 새로이 올 시간들에 대해, 새롭게 엮어갈 관계들에 대해 어떤 날선 자신감이랄지 기대감같은 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애꿎은 입술을 꾹꾹 깨물어 가며 되새긴 지금의 내 윤리일지도 모른다고, 그것이 어떤 에세이스트나 칼럼니스트들이 새로이 우리에게 고함치는 조금 덜 가지고 조금 더 가난해도 괜찮다는 자기긍정, 혹은 자기기만을 거스르는 일일지라도, 그 또한 어찌하겠냐고. 꿈들이 가난히 사멸해가는 시대에 뜨뜻미지근한 꿈 몇 푼 쯤 노잣돈삼아 반지하건 옥탑방이건 못 살 곳도, 못 할 일도 없다고, 단지 뜻밖의 행운이나 예상치못한 불운에도 의연하진 못해도 조금은 무덤덤해지자, 무덤덤해지자. 그것이 죽음에 대한 외면이라 비난받건, 죽어가는 연애세포의 징후이건, 간혹 머릿속을 징처럼 울리는 불안들과 내가 마주하는 방식은 이렇다.  

내가 무덤덤한 사람이 되는 댓가로 치른 삯은, 그 삯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는 시간의 지연일테다. 실은 궁금할 것도 없다. 내장까지 깨끗이 비워냄으로써 사체가 그제야 식재료가 되듯, 스물셋이 묵은 때처럼 밀려나가고 남은 자리에 새 스물넷이 돋기 위해 비울 것들만이 잔뜩이다. 

수요일, 1월 07, 2009

철회.

오기의 오기로 집어넣은 계절학기 수업들을 지긋지긋한 도피 끝에 철회하기로 한다. 강사에게는 건강상의 문제였노라고 메일을 보낸다. 지독한 감기몸살로 정신을 잃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과 수강 철회 사이에 인과관계를 만들어낸 것은 틀림없는 거짓이다. 강사는 거짓을 읽어낼까, 한 명의 학생을 잃은 것을 아쉬워할까, 아니면 한 명 분의 강의료가 줄 것에 분해할까. 어쨌거나 2007년의 겨울과도 마찬가지로, 나는 십만 원이 넘는 돈을 속절없이 학교에 기부를 한 꼴이 되었다. 아무래도 겨울은 진득허니 수업을 듣기에 좋은 계절이 아닌 듯 싶다. 방향모를 열이 달그락달그락 끓어오르는 몸을 겨우 붙들어 앉혀 예상문제와 예상답안을 빼곡이 머릿속에 채워넣는 뜨뜻미지근한 밤, 발끝까지 밀려와 습격을 감행한 피로의 냄새가 가물어 쩍쩍 갈라진 입술 새로 여전히 남아 있다. 

아주 오랜만에 몸살과 수업-없음의 상태가 만들어낸 기묘한 휴식을 맞이한지 며칠째다. 며칠이라고 해야 겨우 이삼일이겠지만, 예상에 있건 없건 간에 어째 휴식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책무덤처럼 불안불안하기만 하다. 어쩌면 휴식이란 것은 처음부터 계획에 있어서는 안 될 어떤 것, 아니면 계획에 있어서도 천하디 천한 아랫것일 수밖에 없지 않는가고 생각한다. 어떤 명목 없이도 가만히 쉬는 데 익숙치 않은 내가 노예근성이 강한 건지도 모를 일이다. 제대로 쉴 줄을 아는 것이 와인이나 크루즈보다 외려 더 고급한 문화자본은 아닐까. 쉼이란 영역에서조차 일정한 자원들을 동원하지 않고서야, 그저 살갗이 바짝 타들어가는 건조하고 생기없는 방 안에 틀어박혀 대단찮은 건강을 볼모로 시시껍절한 만화나 드라마를 몰아볼 뿐이며, 그조차도 피곤한 일이 된다. 

식당에 설치된 티비 스크린에서 김창완이 말했다. 그러면 스스로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건 누구냐고. 이보세요 아저씨, 스스로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만큼 위대한 사람도 드물 겁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위대하고, 내 입술은 갈라져 가고, 당신은 노래하고, 나는 채널을 돌리고. 이제 잠을 조금 줄일 때가 되었다. 티비를 끌 때다. 문제들을 철회할 타이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