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의 오기로 집어넣은 계절학기 수업들을 지긋지긋한 도피 끝에 철회하기로 한다. 강사에게는 건강상의 문제였노라고 메일을 보낸다. 지독한 감기몸살로 정신을 잃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과 수강 철회 사이에 인과관계를 만들어낸 것은 틀림없는 거짓이다. 강사는 거짓을 읽어낼까, 한 명의 학생을 잃은 것을 아쉬워할까, 아니면 한 명 분의 강의료가 줄 것에 분해할까. 어쨌거나 2007년의 겨울과도 마찬가지로, 나는 십만 원이 넘는 돈을 속절없이 학교에 기부를 한 꼴이 되었다. 아무래도 겨울은 진득허니 수업을 듣기에 좋은 계절이 아닌 듯 싶다. 방향모를 열이 달그락달그락 끓어오르는 몸을 겨우 붙들어 앉혀 예상문제와 예상답안을 빼곡이 머릿속에 채워넣는 뜨뜻미지근한 밤, 발끝까지 밀려와 습격을 감행한 피로의 냄새가 가물어 쩍쩍 갈라진 입술 새로 여전히 남아 있다.
아주 오랜만에 몸살과 수업-없음의 상태가 만들어낸 기묘한 휴식을 맞이한지 며칠째다. 며칠이라고 해야 겨우 이삼일이겠지만, 예상에 있건 없건 간에 어째 휴식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책무덤처럼 불안불안하기만 하다. 어쩌면 휴식이란 것은 처음부터 계획에 있어서는 안 될 어떤 것, 아니면 계획에 있어서도 천하디 천한 아랫것일 수밖에 없지 않는가고 생각한다. 어떤 명목 없이도 가만히 쉬는 데 익숙치 않은 내가 노예근성이 강한 건지도 모를 일이다. 제대로 쉴 줄을 아는 것이 와인이나 크루즈보다 외려 더 고급한 문화자본은 아닐까. 쉼이란 영역에서조차 일정한 자원들을 동원하지 않고서야, 그저 살갗이 바짝 타들어가는 건조하고 생기없는 방 안에 틀어박혀 대단찮은 건강을 볼모로 시시껍절한 만화나 드라마를 몰아볼 뿐이며, 그조차도 피곤한 일이 된다.
식당에 설치된 티비 스크린에서 김창완이 말했다. 그러면 스스로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건 누구냐고. 이보세요 아저씨, 스스로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만큼 위대한 사람도 드물 겁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위대하고, 내 입술은 갈라져 가고, 당신은 노래하고, 나는 채널을 돌리고. 이제 잠을 조금 줄일 때가 되었다. 티비를 끌 때다. 문제들을 철회할 타이밍이다.
휴식에 대한 일갈, 공감 백만 개야. 쉬고 있는 게 요게 쉬는 게 아닌 것 같아 혼란스럽고 무너질 것만 같은 때가 얼마나 많은지! 그나저나 꽤 많이 아팠나 보다.ㅠ_ㅜ 내가 괜히 수선떨며 걱정하기 시작한 지금은 이미 네가 완쾌한 시점이었으면 좋겠어.
답글삭제완쾌랄 건 없지만 그래도 이제 몸도 정신도 좀 차려야겠다는 맘이 들었어! 쉴 틈 없이 바쁘게 살았지 않았느냐는 명목 때문에 쉬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냥, 쉬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있는 게 날 더 보듬는 일인 것 같아. 히히. 부산에서는 잘 있는지!
답글삭제Hello. 오랜만. 새집에서 보는건 처음이군! 자고로 겨울은 집에서 이불 돌돌말고 군고구마 까먹는 것이 제맛이지. 냠냠.. 여긴 춥다. 군고구마도 없고 솜이불도 없고 친구도 없고ㅍ 그치만 썩 나쁘진 않아 - 완벽히 자유로 충만한 겨울이니. 비교대상이 고작 서울의 겨울이라는게 문제지만..
답글삭제보고싶군, 친구. 40일정도밖에 남지 않았네! 고기집탐방을 기대하겠어 +_+
p.s 백수된 기념으로 내 수강신청을 대리해주는건 어때 -_- 고기한턱정도는 쏴주지! **
from taipei
안녕! voicebreaks에서 온 J랍니다. 예전에 이곳을 알게 돼서 인사 남겨야지 하다가 깜빡 잊어버렸다는;
답글삭제주옥같은 글들을 이곳에 몰래 올리고 있었네요. 자주 와서 감상 및 잘 살고 있나 감시를 해야겠어요ㅎㅎ
얼마 전 나도 감기로 고생했는데 그대도 독하게 앓았나보네요. 몸 조심하고, 피부에도 신경 잘 쓰고, 거기 그거 첫 걸음도 잘 내딛길 바래요.
안녕~!
from taipei / 어째 올 겨울 들어 군고구마를 먹은 기억이 없네. 서울의 겨울은 춥고 둔해. 역시 고기만이 우리 위안이려나. 훌륭한 고깃집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군고구마는 내가 후식으로다가.. 수강신청 계획서를 작성해서 메일이든 쪽지든 보내줘!
답글삭제J / 요즘 감기환자들로 병원이 그렇게 바쁘대요. 가습과 비타민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은 연초입니다. 하하. 다음엔 더 나아진 피부로 만나요!
39일 남았다 kuku 쪽지로 시간표 보냈어, 미리 진심으로 고마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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