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3월 18, 2009

바람부는 날.

바람이 닿은 자리엔 현기증이 인다. 바퀴가 불쑥 솟은 버스 뒷자석은 현기증만큼이나 어지럽고, 동석한 사내는 선풍기 바람처럼 끊임없이 기계에 대고 말을 늘어놓는다. 몽롱해도 잠은 들지 않는 질겅질겅한 피로를 씹으며 본의 아니게 대화를 엿듣는다. 누구의 새로운 연인들이며, 잇몸에 파로돈탁스 어쩌고 하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 저물듯 저물지 않자, 나는 참으로 신기한 화술이라고 생각한다. 둥그스름한 해가 송곳같은 오후의 볕을 쏟아내며 구름인지 지평선인지 사이로 저문다. 사내는 기계에서 입을 떼지 않고 어느 정류장에선가 하차한다. 사내의 낮고 장난스런 목소리가 몇 차례 버스 안을 부유하고, 그제서야 나는 졸음에 빠지기 시작한다. 

바람부는 날에는 라면을 먹어야 한다. 아니, 흐린 날에도, 때론 비오는 날에도, 화창히 맑은 날에도 라면은 적합하기 이를 데 없는 메뉴이다. 언제부터 냉장고에 들어 있었는지 모를 버섯 몇 조각과 김치를 수북이 넣고 전골인지 찌개인지 모를 것을 끓인다. 라면은 언제나 처음이자 끝이었다. 나는 라면을 잘 끓인다. 별스런 재주라기보다는, 그저 바람이 부는 날이기 때문일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혹은 지독한 현기증 탓에 미각을 잃은 까닭일는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떤가. 먹어보지 않은 라면에 대해 품평할 이는 없을 것을. 

말간 콧물을 섞어가며 붉은 액체를 보약처럼 들이킨다. 쓰라리고도 통렬한 감각이 혀의 표면에 돌기처럼 자리잡아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고통을 즐기는 사람이었던가. 궁지에 몰리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고는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것이라는 직감, 혹은 진검승부로도 목이 달아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졸렬한 자신이 얼마간은 있을 때만이다. 이해도, 계산도, 예측도, 통제도 불가능한 고통을 즐기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며 남은 버섯과 국물을 하수구에 따라 버린다. 주차장에 오줌을 지리던 에리카가 떠오른다. 우물우물 입을 헹궈 내면 핏자국같은 고춧가루들이 쏟아져 나온다. 낮도 밤도 아닌 그 어스름한 접경의 시간에 쾌(快)와 고(苦)라는 두 개의 머리가 맞붙은 괴수가 성큼성큼 걸음하는 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보아 온 기분이 든다. 

어느 쪽인지 모를 불안도 몇 차례인지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응어리가 풀어지듯 달아날 것을, 다시 찾아올 그 괴괴한 얼굴들이 별안간 그리워질 것을. 이(齒)를 들여다보는 사내는 왠지 자신의 일부를 어딘가에 두고 온 듯한 표정이다. 바람이 부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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