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에 고양이가 한 마리 들어 앉았다. 꼼짝앉고 꼬부랑 글자를 노려보는 일도, 가끔 핥짝거릴 수 있는 무가당 주스와 레토르트 카레가 있으면 괜찮다. 바닥의 먼지는 수시로 훔쳐낼 필요가 있다. 아무도 흙발을 들일 일이 없기에 더 정갈해야 한다고 믿는 까닭이다. 그러나 그 습성이 어디로부터 온 것일는지는 모를 일이다. 방과 책과 스스로가 우주의 전부인 셈에야 아무도 질문을 던지지 않기 때문이며, 공기의 흐름이 멎은 우주에서는 시간과 감정마저도 지루할 만큼 안정적인 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운 적은 없다, 다른 누군가가 혼자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갈하게 톡톡 쳐내듯 털을 깎던 여인이 묻는다. 혼자 계시면 외로우시겠어요, 강아지라도 키우시는 건 어때요. 고양이가 지루한 듯 하품을 하며 입꼬리를 치켜 세워 비웃는 모양이 들여다 보인다. 우린 다들 바빠요, 이 몸뚱아리 하날 건사하는 것도 일이야. 어째 털갈이는 시원찮았다.
여느 때처럼 사과 여섯 알이 든 봉지를 물고 오는 길은 덜 갈린 먹처럼 머릿속에 잘 스미지 않아 탈이다. 어쩐지 고양이를 본 적이 없는 동네다. 그러므로 동네친구는 불가능한 항이다. 어떤 종류의 강렬한 불능에 선선히 몸을 팔아치운 량으로 시덥잖은 여자가수의 신곡을 흥얼거린다. 어둠 앞에 혼자 서 있었던 적은 없다. 그럴 마음이 들었던 적도. 아스라한 불량식품의 맛처럼, 누구도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욕망을 타고 난 적도 없었거니와, 배운 기억도 없다. 살아남는 법만이 맹수의 숙명처럼 사지의 마디마디에 각인된 것 같다. 어떤 우발적 가해로부터도 달아나고 싶은 맹수의 종착지는 방이다. 감정도 욕망도 버리고서야 친절하고 무능한 고양이로 기지개를 펼 수 있게 된다. 당분간은 모자를 쓸 셈이다. 당분간은 기억도 울음도 열락도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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