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는 말은 아무런 힘이 없다. 악인은 죽음으로 처벌받거나, 끝끝내 미스테리로 남거나, 스스로 신에게서 죄사함을 구할 따름이다. 미안하다는 말은 애꿎다. 말이며 욕동이며 정향이라는 것들이 다 하나같이 참으로 애꿏었다. 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다섯 살 배기처럼 굴었을는지도 모른다. 윤리가 굴절되고 신뢰가 불가했던 것은 애꿏었던 처음부터 당연했다. 애꿏은 말을 벌레처럼 게워내고, 꼬릴 잘라 살아남은 머리인양, 혹은 머릴 내어주고 꿈틀대는 꼬리인양 기었다. 어느 쪽이건 자기를 지키고 보존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했을 것이다. 고이고 썩고 성마를지언정, 침해당하지 않을 3기니짜리 그 온전한 방이 떨군 낯짝보다 중했을 것이다. 값을 치르고 얻은 것이 없다 말할 수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죽지 않고 살았으니 되었다. 터지지 않았으니 부푼 자리도 가라앉을 게다. 사산아를 묻는 심정으로 무엇도 캐묻지 않고, 심지어 애도조차 않기로 하자, 나의 죽음을 나로써는 애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죽은 아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로 황급히 배를 땅에 대고 기었다. 내가 꼬리인지 머리인지, 묻혔는지 묻는지도 궁금해하지 않고서.
이렇게 해서 내일을 살아갈 존엄이라는 허울이 바퀴처럼 끈질기게도 살아남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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