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5월 05, 2009

기억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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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 계절이다. 비좁지 않은 방이건만, 유난히 볕이 드는 틈은 좁기만 하다. 습도계는 때때로 표시한도를 넘어 HI, 하고 깜박거린다. 이름모를 날벌레들이 소리없는 분란을 일으키며 인사를 해 온다. 나는 한동안 난폭한 학살자가 되었다가, 제풀에 지쳐 그네들이 공기 중을 점령하게 두고 침대에 둥우리를 틀었다. 책상은 외려 잡동사니들이 무섭도록 쌓인 창고가 되고, 자그마한 의자는 탁상이 되어, 침대는 왼갖 자료들이 산란스레 펼쳐진다. 때때로 빳빳한 종잇장들이 몸 아래서 구겨지지 않게 조심하며 고개를 베개에 파묻는다. 자연스러운 어둠이 좋은 유일한 때다. 허나 눈을 뜨면 밀도높은 공기가 날벌레들처럼 귓속으로 날아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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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무렵에 좋아했던 연작소설이 있었다. 무엇이건 목록을 만드는 걸 취미삼던 소녀의 이야기였는데, 그 목록이란 대체로 하잘 것 없어 보이지만 막상 당사자에게는 퍽 흥미롭고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 즈음부터 나도 무수한 목록들을 만들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더랬다. 어디서 굴러 들어온지 모를, 인조가죽 표지에 천구백구십 어쩌고 하는 숫자가 금색으로 박혀 있었던 회사원용 다이어리에 내가 기록했던 것은, 이를테면 만화영화 주제가의 가사라든지 아니면 만화의 명대사들이었다. 글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번이고 지우고 고쳐 쓴 그 다이어리의 앞 몇 장이 너덜너덜해질 즈음, 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글자가 아니라 그 기록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다이어리와 함께 일기장 몇 세트도 다시 꺼내보지 않을 독한 결심과 함께 책장 어느 안쪽에 파묻혔다. 영락없이 비좁았던, 허나 어슴푸레하게 반짝이던 것들로 빼곡했던 취향의 창고는 굳게 닫혔다.

그 때 걸었던 빗장이 만화와 같이 재현된 것들에 대해서였는지, 혹은 재현된 것들을 내가 어줍잖게 재현한다는 것에 대해서였는지, 아니면 재현된 것들로 기워진 아이다운 우주 그 자체에 대해서였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 무렵 나는 TV가 아닌 현실이 주는 통각들을 하나하나 앓고 있었고, 아픔에 닿은 어른들의 세계를 탐내던 참이었다. 이를테면 여름밤을 메운 모기들을 한 손으로 움켜잡는다거나, 낚시를 간다든가, 비가 쏟아지는 날의 드라이브, 아니면 늦은 밤의 배웅 같은 것들. 철없음은 늘 철들어 보이는 이들의 세계와 대별되어 만들어졌고, 나는 잘 다려진 셔츠처럼 말쑥한 모양새로 어른들의 세계에 하이, 하고 안착하고 싶었던 게다. 차를 타고 종종 넘던 학교 근처 교외로 나가던 어느 고개를 넘을 적에, 아주 약간 사뿐히 떠오르는 느낌과 차창에서 흔들리던, 바이올린을 켜고 있던 사기 인형을 기억한다. 나는 비가 새는 방과 뒤틀어진 마루와 더러운 커튼을 미워하며 어른됨을 사랑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어쩌면 철없는 세계는 비루한 소년의 취향이 아니라 노란 장판에 덧대어진 남루함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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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탐냈던 어른됨은 세계를 식별하고 분별하는 법, 이었던 것도 같다. 그것은 목록을 만드는 법을 바꾸는 일이기도 했다. 무엇을 해선 안 되는지를 기준으로, 사랑하는 것들의 목록 대신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만드는 것. 나는 들끓던 욕망을 침착하게 해서는 안 될 것과 해야 하는 것으로 분류하고, 다시 후자를 할 수 없는 것과 있는 것으로 나누어 마지막 것들만을 몫으로 남기는 법을 배웠다. 그것은 내게 주어진 몫이자, 내가 가질 수 있었던 최대한의 몫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배운 바에 따르면 희생이라는 말은 명백한 오버다. 지금 가진 것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뭔가를 버려야만 했다. 버린 것들의 값어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 그래서 과거를 반추하는 일은 대체로 비생산적인 일이라고 배웠다. 과거는 언제나 선택되지 못한 가능성의 항들이 질겅이며 바짓가랑을 붙들어 매는, 정체와 이물감으로 가득한, 철없는 소년의 창고일 뿐이라고 말이다. 기억에 대한 경제학은 기억을 기억하지 않는 경제학이며, 그것이 곧 생과 성공에 대한 경제학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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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비라고 해서 퍽 새로울 것은 없다. 으레 하는 행사를 치르듯, 다 잘 될 거라는 말을 주억거리는 것 외에 내가 내놓을 것이 무에 있었단 말인가. 추의 진폭이 점차 잦아들듯, 감정은 절정으로 치닫기보다 둔중하게 가라앉아 식어내린다. 파국은 언제나 지연되며, 현실의 존속과 통합된 존재여야 할 나에 대한 믿음 역시 위태롭게나마 보장된다.

나는 하릴없이 체한 듯 막힌 차도 위에 오래 놓여 있었다. 어제까지 멀쩡했던 정거장 하나가 철거되고 임시로 마련된 자리에 표지판이 장승처럼 버티고 선 꼴이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옆을 지나간다. 도로를 면한 한강은 물결이 잘아 그런지 비현실적인 모양을 하고 있다. 사실, 굳이 현실적인 것을 찾자면 요란하게 바닥을 파헤치는 포크레인의 기합과, 옆 좌석에서 수상쩍게 휴대폰을 열었다 닫는 헐렁한 셔츠의 사내뿐이다. 굴곡진 길을 따라 버스가 몸을 기울이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도로는, 흡사 거대한 분쇄기가 고철들을 하나하나씩 짜부러뜨리는 장면에서 소리만 제거된 듯 고요하고 엄혹하다.

유달리 기다리는 버스가 느리게 온 탓이다. 대신 집어 탄 버스는 짓궂게도 가까운 길을 굽이굽이 돌아갔다. 깡통으로 무장한 시커먼 사내들이 어떤 길목인가를 막아선 모습에 이어, 가엾은 천조각들을 날리며 육교 위를 달리는 이들이 시간을 분절시킨다. 오래 묵은 피로가 사슬처럼 발목을 붙들어 매는 동안 차체는 먹잇감을 노려보는 맹수마냥 슬금슬금 자리를 옮겼다. 농밀한 음담보다 더 껄끄러웠던 시간들은 이제 농담이 되어 용맹히 귀환하곤 했고, 나는 버스의 무거운 궁둥짝을 욕하며 그 피로들을 빚독촉처럼 감당하면 그만이었다. 과거가 그을린 피부껍질처럼 벗겨져 나가고, 시뻘건 맨살은 종종 괴괴한 비명을 토해낸다. 기억하려 애쓸수록, 기억하고자 하는 과거도 기억을 시도하는 현재도 불안정해진다. 허나 그 황망감이야말로 기억한다는 행위의 핵심일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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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기가 잔뜩 오른 사내는 멱살을 틀어쥐듯 오늘이 대체 무슨 날인지 아느냐며 음성을 치켜세웠다. 알아요 알아, 하지만 핑계를 대지는 않으렵니다. 다만 특권화된 어떤 현실이 누군가의 현실에는 과거이기도, 미래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탈탈 털어넣어 팔자에 없는 소줏잔을 기울일 따름이다. 경제학에 작별을 고하고 남은 기억들은 여전히 시큰한 것을, 별의별 연놈들이 다 그리운, 별이 보이지 않는 밤이다.

댓글 4개:

  1. 아직 9호선 개통은 안했나. 미안하지만 다음주는 내가 미친듯 바쁠것같아. 적당히 포기할 생각도 미리 하고있지만. 영화는 정말이지 아쉽군ㅠ 중도 한구석에 쳐박혀 혼자 보기는 싫은데!! 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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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9호선은 아직 소식이 없네. 개통보다는 온 서울 도로를 버글거리는 공사나 좀 정돈되었으면. 요즘은 영화보담은, 더 더워지기 전에 한강변이나 선선히 걷고싶다. 이제 슬슬 학기가 끝나가네. 너무 지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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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거봐, 넌 거부하고 있지만 이미 100일도 채 되기 전에 네 방은 더러워진게야. 어쩐지 나는 이 긴 글을 보고 첫문단에 집착하고 있다- 캬아 나의 예언은 적중하였어 뭐지 이 뿌듯함은=ㅅ=)/ -메일 보고나서야 블로그로 기어들어온 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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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봄봄 / 여기의 장점이자 단점은 댓글 확인이 비동시적이라는 데 있는 것 같아. 커피 너무 잘 마시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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