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5월 23, 2009

애도하지 않아야 할 것.

늘 그렇듯, 습도가 80%를 넘는 찌뿌드한 아침이었다. 마음먹었던 리딩보다는 뉴스 브리핑이 먼저라는 핑계로 클릭한 웹에서는 수상쩍은 글들이 가득이었다. 쉬이 정신이 들지 않았고, 마음이 적잖이 먹먹해졌으며 유달리 좁은 창으로 들어오는 채도도 낮았다. 어쨌거나 복장을 차리고 집을 나서야 한다. 허겁지겁 올라탄 마을버스에서는 계속해서 뉴스가 흘러 나왔다. 죽음을 판정하는 병원장의 말과, 기자의 다급하고 정갈한 보도와, 외신 보도에 대한 친절한 요약과, 망자의 생애에 대한 브리핑까지, 모든 것이 마치 준비된 것처럼 착착착 내놓아졌다. 귀는 적잖이 언짢았다. 혹은, 아파트 단지 사이를 누비는 버스 안에서 보는 세계가 참으로 살풍경했던 탓일는지도 모른다. 어떤 승객은 오늘의 뉴스 아닌 어제의 뉴스가 실린 신문의 경제면을 정독했고, 한 아이는 대낮의 즐겁지 않은 라디오 방송에 엄마를 보챘다. 지하철역에 도착하기까지는 평소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하철 역에서 휴대폰으로 정신없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젊은이들을 보았고, 엉겹결에 나도 그 중 하나가 된다. 문득 파란색의 텃밭이었던 동네에서 엄마를 설득해 노란 물결을 찍게끔 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바로 그 사람을 대학시절 줄곧 투쟁과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몇 번의 노동절들과 집회들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자연인 노무현을 둘러싼, 정치의 진실 혹은 이미지라는 허구적인 대립항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노무현의 것들이랄 수 없는, 노무현이라는 이름에 투여되었던 각축하는 의미들, 혹은 꿈들에 보다 관심이 있다. 아니, 그러한 관심이 생겼다. 누군가의 죽음이 이러한 관심의 생산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 참으로 역설적이라고 생각했을 때, 지하철은 한강을 지나는 참이었다. 386이라는 코호트적 실체가 존재한다면, 그 꿈이 한강에 투신한 것일는지. 민주주의가 5년에 한 번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으로만 이해되는 나라에서, 그 무수한 투표 쪼가리들에 기입된 동그라미들에 투사되었던 꿈들이 한강둔치에 쓸리듯 떠올랐던 겐가.

말로만 듣던 호외가 돌았다. 누군가는 죽음의 동등하지 못한 값어치에 대해서, 주목없이 죽어간 노동자, 농민, 철거민들에 대해서, 또 누군가는 사망인가 서거인가를 두고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무책임하고 나약한 죽음이라며 울분 혹은 비아냥을, 또 누군가는 추모와 애도의 꽃을 던진다. 어떤 이들은 광장으로 모이자고 했고, 그들 이전에 전투복을 갖춘 사내들은 앞서 모여 있다. 확산되는 것이 무엇일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엇에 대한 울분, 무엇을 향한 애도일는지도 명확하지가 않다. 어떤 갑갑함과 울컥함과, 슬픔의 정체에 대해 우리는 잘 모른다. 우리는 무엇에 대해 애도하고, 또 무엇을 애도하지 않고 있는가. 애도를 통해 떠나보내야 할 것과 여전히 붙들고 씨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우울증적으로 앓을 것이며 무엇을 전선에 세워야 하는지에 대해 더 말해야 한다. 어쩌면 애도를 통해 다 흘려버리지 말아야 할 어떤 것들이 있다. 쉽사리 향을 피워 애도하지 않아야 할, 어떤 계기들이 있다. 하나의 죽음은, 심지어 망자가 생전 딛었던 걸음들 사이에서 죽어간 또 다른 죽음들과 어떠한 접점에서 만난다. 괴이쩍기 짝이 없는 그 접점이, 비일관적이고 또 신뢰하기 힘든 이 슬픔의 확산에 대한 발화의 시작점이 되어야 할는지도 모른다.

층층이도 굴곡진 현대사는 한국 국민들에게 집단 망각이라는 방어 기제를 학습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떤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계기나 국면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그러한 집단적 망각의 상태로 '우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이름으로 그 실체를 끊임없이 취약하게 만들어 온 망각의 역사 그 자체에 대해 물을 때에서부터 가능할 것이라는 오래된 이야기도. 검은 양복을 입은 애도와 추모는, 다른 수많은 촛불과 노래들이 그러했듯 곧 사그러들고 망각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싸우고 또 만들어가야 할 것들이 애도와 추모가 꺼진 자리에 있다. 자연인 노무현의 죽음이 환기시키는, 짧은 현대사와 정치와 민주주의 따위의, 기실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낯설고도 민망스러운, 그럼에도 탐스러운 그 어떤 꿈같은 것들에 대해서만은 꽃을 던지지 않아야 할는지도 모른다. 망각의 반댓말은 애도가 아닐 것이다.

댓글 2개:

  1. 이제 어디로 가면 널 만날수 있는지 모르겠군. 양꼬치구이 먹으러와. 生日快樂! 생일날 집구석에서 리딩만 긁적이지 말고 맛있는거 사먹고 숨쉬며 보내렴. Sunk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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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귀신같이 내 일상을 맞추다니! 게다가 양꼬치구이라니 정말 매혹적이야! 6월 안에는 먹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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