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7월 18, 2009

수요일, 7월 08, 2009

여행기.

며칠만에 나의 방이 낯설어진다. 창이 작은 방에는 햇살에 뭉개지고 일그러질 형상들도 서리지 않는다. 몇 주간 쌓인 두터운 먼지들을 훔치며, 그 자리에 왜인지 절박한 심정으로 땀을 뚝 뚝 내려놓았다. 세상에 없는 말들을 다 쓴 치약을 짜내듯 기합을 넣어 토하고, 말이 말을 집어 삼키고, 말과 말이 충돌해 사라지는 초라한 마술의 시간이 지난 탓일까. 차고 빈 것들이 분간이 가지 않는 진지전을 예비하는 마음으로, 설거지만을 남겨 둔다. 아, 아직 옷장으로 향하지 않은 여행용 옷가지들도. 세탁기 위엔 빗방울에 흠씬 두들겨맞은 가스 고지서가 너덜너덜한 채로 놓여 있다. 그젯밤 라디오에서는 예일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 스물 두 살 여자아이의 고민상담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녀는 압구정에 있고,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며 미래를 걱정하는 중이었다. 영어로 말하는 사람들의 나이를 도통 짐작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고지서에 쓰인 짐작하기 어려운 숫자들을 해독하느라 골몰했다.

38도를 넘나드는 혹서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했으므로, 제각기 다른 인간 군상들은 쉴 틈 없이 젓가락질을 해댔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접시들은 풍요롭다 못해 스산했다. 토악질 나는 땀내를 풍기는 사내들은 서경이며 북경이며 동경이며를 가리지 않고 출몰했으므로, 나는 도통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값비싼 음식과 싸구려 농담은 놀랍게도 조화로웠기에, 그 뻔한 조화를 안주삼아 뜨뜻한 맥주와 싸구려 커피를 잔뜩 들이키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고, 나는 무척이나 분했다. 하염없이 자는 동안에는 엄마가 쪼그라드는 꿈을 꾼다. 엉엉 울다가 일어나도 베갯잇은 비현실적으로 하얬고, 아침부터 싸구려 농담은 볕처럼 지칠 줄을 몰랐다. 차라리 이국어로 지껄이는 순간은 엉거주춤하게나마 자유로웠으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안주를 시키는 법을 연마했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그 모든 것들을 싸잡아 잊어 버렸다.

나는 이국에서 몇 차례고 고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여자에 대해 떠올렸다. 이미지가 전부인 남자들에 열광하며 끊임없이 지갑을 열고, 다른 여자들과 입이 부르트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을 그 여자의 고향과 기원. 나는 한 번도 나의 고향에 대해 물은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알았다. 삶의 치부에 대한 새파란 고해 없이 고향을 말할 수 있는 법은 없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가장 주변에 있던 그네들이 내게 고향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나는 홀연히 네트의 바다로 사라진 그녀를 찾아 승인받고 싶었다. 캐리어는 한동안 대문 밖에 놓여 있었고, 나는 샤워를 하다 말고 벗은 몸으로 캐리어를 문 안으로 들인다. 허락없이도 작동하는 어떤 시간과 공간을, 청소도 해독도 어려운 언어들을, 나는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것들은 너무 많은 눈을 가졌다. 피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