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12월 07, 2009

the other room.

내가 머문 방의 전면을 차지하는 유리창의 이중 블라인드를 마치 닻을 끌어 올리듯 열면, 바다를 면한 햇빛과 함께 무수한 방들이 눈을 굼벅인다. 네 평 남짓한 정사각형들이 레고블럭처럼 쌓여, 마천루라고 불리는 거대한 군집의 속살을 빼곡이 메우고 있었다. 관광용 선박들의 호화로운 번쩍임을 제외하면 까맣게 숨죽은 밤의 건물들 사이로, 그것들이 수천 년을 지켜 온 영물처럼 그리 서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햇살은 새하얀 시트에 누운 이 도시의 객을 알몸으로 만든다. 나는 한 아름이 채 안 되는 창 밖으로 애처롭게 내밀어진 굳은 철심같은 빨랫대 위에서 애처롭게 빨래가 나부끼는, 수천 개의 방들과 평행선에 앉는다. 나는, 창이 굳게 걸린 하나의 방 안을 들여다본다. 그 안에는, 찬장 가득 쌓인 담배 보루들과, 비루한 만찬과, 가련한 탱고가 빨랫감이 나풀대듯 피고 또 진다.

기름때가 빈들대는 음식들을 접시를 깨뜨릴 요량으로 꾸욱 꾹 눌러 담아 다시 입으로 가져 담는, 그 입은 방들이 제 두터운 술을 노려보는지도 모르는 채로 남루합네, 후집네, 험담을 늘어 놓는다. 마주 앉은 또 다른 입은 과묵한 행세를 하며 저래 뵈도 집값이 얼마 하는지 알면 못 할 말이라며, 접시에 누운 생선 대가리같은 미소를 흘린다. 저들 입이 열릴 때마다, 나무인형의 코처럼 빨랫대가 길어져 스카이라운지의 통유리를 뚫는 상상을 한다. 저 빨래가 마르기를 기다렸다 또 다음 하루의 빨래를 거는 이들의 삶도, 나도, 하늘처럼 맑고 투명해서 보일 리가 없다. 접시에 놓인 고깃조각이거나, 연봉이나 집값 같은 숫자가 아닌 모든 것들은 추상일 게다.

꺄무룩 잠이 든다. 그가 돌아왔다. 쫓기든 공항으로 떠나던 모습 거의 그대로, J의 손에 이끌려, 멋쩍은 듯 수줍은 듯 문간을 사뿐 넘어선다. 다른 누군가가 그와 포옹하려는 찰나, 급히 뒤에서 그를 끌어 손을 붙잡는다. 어느 쪽인지, 손에 온기가 거의 없다. 적잖이 실망한 기색인지, 불편함인지, 곧 이은 왁자지껄함에 잠깐의 공기는 나와 함께 씻겨 나간다. 그 순간에도 나는 써야 할 글에 아차, 라는 입말을 붙여 가며 생각한다. 생각한다. 하얗고, 아늑하고, 피곤하고, 걱정스럽고, 혼자인 이 방을 몇 밤이나 더 복제할 수 있을까. 혹은, 언제까지 타인의 왁자지껄함을 거름삼아 침묵을 지킬 것인가, 하는. 무엇으로부터도 쫓기듯 나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으슥한 새벽공기가 아득한 꿈으로부터 잔잔히 채광이 아침처럼 밀려 오는 현실로 나를 몰아낸다.

목요일, 12월 03, 2009

the point of no return.

멀어져가는 손들을 바라본다. 지그시 밀착되었다가 탯줄이 빠져나오듯 그것들이 홀연히 놓이고, 전연 다른 국면으로 전치되는 움직임들이 흐릿한 필름의 한 장면인 양, 지지직거리며 멀어져 간다. 머쓱히 덮쳐 온 그림자처럼, 어떤 시점에 놓인다. 붙잡고 놓는 것은 그다지도 중하고 귀한 문제였던가. 그것은 일종의 소실점이었다. 시선의 중력이 깊숙이 뿌리내린, 따끔하고 또 묵직한. 버스가 올 때 나는 그 시점을 놓친다. 통증과 징후는 때로 같은 것으로 둔갑해 우리를 홀리지 않던가. 그럼에도, 꿈쩍하지 않는 그것을 나는 결코 내어놓지 않을 테다. 볕을 보기 전에 숨죽은 그것, 공기와 닿으면 산화될 그것, 그것. 나는 한 번도 그것을 알았던 적이 없노라고, 종국에는 버틀러 식으로 말하고 싶은, 피할 수 없는 지점에 내몰린다. 흐리어진 세계는 미동도 않은 채 어슴푸레한 비명만을 들릴 듯 말 듯 내어놓는다. 밀물처럼 밀려와 눈꺼풀이 닫힌다. 무수한 눈들이 종잇장같은 그 살점 뒤 세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