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11월 29, 2010

time out.


2년, 아니 3년 전에 받은 메일을 본다. 내 메일함 중 어떤 것은 30일이 지난 메일들을 스스로 비운다. 진보는 돈이 없고, 그래서 서버용량이 적은 탓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진보는 쌓기보다는 버리는 것이라 그런 것일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 메일함에는 더 이상 흔적이랄 것이 없는 줄 알았다. 그래서 아주 우연히 찾았다. 보관함이라는 폴더가 있는 줄은, 아마 2년만일까. 거의 3년 전의 글을 열어보는 것은 이상한 기분이다. 그 보관함에는 내가 쓴 것도, 내가 받은 것도 있다. 나는 그 메일을 내가 쓴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읽는다. 정말 내가 쓴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확실히 나는 너의 글을 사랑했다. 그 글은 나와 닮아있되 묘하게 차가움이나 따스함을 조절할 줄 알았다. 일관되게 숨막히고 건조한 내 글과는 달랐다. 그래서 나는 그 메일을 보관했던 걸까. 잘 모르겠다. 다만 그 때는 전연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너의 상처가, 네가 온 존재로 마주했을 그 폐부를 왠지 한 겹쯤은 더 이해할 것만 같다고 생각한다. 지독한 상처의 출처인 나의 악독함을, 이제는 조금은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한다. 너의 문장들은 3년 전의 나를 비춘다. 너는 내가 말로도 꺼내지 않은 나를 너무 잘 알았던 것 같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많은 이들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지만, 단 한 사람에게만 그렇지 않게 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문득 어제 너를 생각했다. 너의 몸이 아니라 너의 눈을 생각했다. 그 눈은 네 말처럼 너무 차올라서, 그렇지 않은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끝끝내 속물이 아니고자 하는 속물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종내에는 받아들여야 하는 시점에 놓인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메일에는 너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첨부 파일로 들어 있었다. 요청하신 파일은 대용량 첨부파일 보관기간인 30일이 지나 삭제됐거나, 존재하지 않는 파일입니다. 기한이 지난 감정들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세상은 아마도 오지 않을 것이다.


목요일, 8월 19, 2010

목요일, 7월 08, 2010

Aqualung (2002), Everything Changed.





마법이 대기를 타고 이동해 와, 그 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어루만져.
너는 내 삶 속으로 아주 조그맣게 들어와 모든 것을 변화시키네.
수정구슬을 들여다 보아도 미래는 전혀 분명하지 않고, 과거는 충분히 견디기 어려워.
이 낭떠러지 위에서 -

마법은 지면에 자리를 잡아, 그리고 그 곳에 그 애는 영원히 머물러.
몇 분을 몇 시간, 며칠로 변화시키고, 점차 점차 잦아들어.
그 무엇도 그 때와 같을 수는 없을 거야, 알아, 알아.


화요일, 7월 06, 2010

여름, 사막의 별.


2층 높이에 걸린 단색 티셔츠의 몸통으로 불룩하게 바람이 날아든다. 세탁소 옆 호스에서 흘러나온 덥고 야트막한 웅덩이에는 어린 참새 셋이 앉아 달아날 생각을 않는다. 털이 새초롬히 젖어 있다. 과일 가게 아저씨가 으레 그렇듯, 원래 만 원짜리라고 다섯 번이나 강조한, 팔천 원 혹은 육천 원을 주고 산 수박을 네 등분으로 나누어 냉장고에 넣는다. 습기에 말문이 막힌 날마다 과제를 하듯, 한 덩이씩을 해치운다. 선풍기 바람에 땀이 조금 식는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면 미동도 않는 이 계절의 풍경인 양 시간이 멈춘 방에는 건조대가 쉽사리 치워지지 않는다. 보송한 냄새가 나는 말쑥한 셔츠가 그림처럼 걸려 있기도 했다.

셔츠가 걷히고, 찰흙으로 빚어낸 것 같은 들뜬 어둠이 깊숙이, 깊숙이 방 안을 파고 든다. 나는 잘 모르겠어, 라디오인지 목소리인지 모를 신호연결음이 귓가를 서성이는 모깃소리인 양 날카롭다. 곁에 있어도 먼 온기와, 멀리 가고 남은 자리에 채워진 계절의 열기가 도드라진 몸의 둔덕을 타고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져 모자람없이 매끈한 목덜미에 닿는다. 아마도 그 쯤, 그 덥고 성마른 목덜미 쯤으로 떠난 것일게다. 말쑥한 셔츠 대신 눅눅한 반지하방의 냄새를 머금은 티셔츠로 채비하고서, 우리에게 없는 몽고반점의 기원이라도 찾아 북쪽으로 향했는지도 말이다. 며칠간은 꿈 대신 모기 물린 자국들을 얻는다. 여름이 지나면 사라질 붉은 자국들이 제각기 별자릴 그려 저기 저 사막의 별에 들릴랑 말랑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이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들을 거짓이 아니라고 믿게 하는, 내 것이라고 말하게 하는 그 시간들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편지를 쓴다.

일요일, 6월 13, 2010

안녕, 연애시대.

적합함의 조건을 좇아 택시를 달려 왔음을 깨달았을 때, 두 번 우려낸 차에서 쓴 맛이 돌았다. 차가 식고 데워지는 몇 번의 순환은 곧 합리적이라고 믿었던 사고와 그에 종속된 감정이 돌고 돌아 만나고 뒤엉기는 시간이기도 했을 게다. 찻물의 색이 엷어지듯 감정이라고 믿었던 논리가 썰물처럼 빠져 나감으로써, 고맙다, 미안하다, 와 같은 인사치레의 말들이 삶에서의 사소한 진실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논리와 감정의 여러 겹의 연결고리들이 제 배를 까 보이고, 하나가 하나를 삼키는 장면을 목도하며, 그것들이 반드시 한 몸이 아닐 수 있음이 웅덩이의 낙숫물처럼 한 데 고여 나를 비추고 있었다. 휘적휘적 걸어 그 장면으로부터 멀어진다 한들 잔상이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선풍기의 습한 바람이 살갗에 쪼이는 계절이 며칠새 불쑥 방에 고개를 들이민다. 고급스런 레이블을 자랑하는 주전부리들도 가혹하게 초라한 방을 찾았다. 붉은 실로 연결된 은호와 동진은 보란 듯 다른 연애를 시작하고 헤어짐을, 가는 실은 느슨해졌다가도 또 팽팽해지기를 반복했다. 저들의 삼십대가 연애시대랄 수 있다면, 내게 왠지 삼심대는 까마득하다기보다는 이미 아득한 과거의 미래, 미래의 과거인 것만 같다. 주전부리들은 각종의 부패가 동결된 냉동실에 삼십대인 양 자릴 잡는다. 나는 그것들과 더불어 적합함에 대한 믿음과 동지에 대한 선망을 얼린다. 타임캡슐과는 달리 그 곳에 들어가는 것들은 회고가 아닌 폐기가 그 종착역이 될 것임을 알았다.

피죤으로 과하게 헹구어 낸 빨랫감들은 유독하기 그지 없는 수면가스의 출처였으므로, 나는 꺄무룩 잠이 든다. 꿈에서도 더운 땀이 이맛자락에 배어나는 계절의 방이다. 잠에서 깨기 전, 시꺼먼 손이 단팥빵을 실은 리어카가 지나간 자리의 자욱한 흙먼지를 걷어내고 싱싱한 봉지의 빵을 건네며 땀을 훔쳐 준다. 그것은 낯선 이의 먼지같은 탄생에 대한 축복이고, 단팥같은 조잡하고 솔직한 맛의 감각의 건넴이었을 게다. 설핏 그 가운데서 나는 어머니에게 쓸 편지에 대해, 그리고 사야 할 감기약 한 봉에 대해 떠올린다. 수줍고 어색하게 말을 섞기 시작한 이들 새로 빵집의 주방에서는 더운 김과 함께 비현실적일 정도로 또렷한 라디오 디제이의 음성이 새어 나온다. 가난하지 않을 수 있던 내 스물 다섯의 날들, 너로 인해 빛나던 날들. 라디오는 고장이 나지 않기로 한다. 당분간은 연애시대를 보지 않기로 한다.

화요일, 6월 08, 2010

토요일, 5월 29, 2010

기다리는 이야기.

잔물결처럼 빛살이 친다. 응달에 놓인 이에게 볕은 오히려 더 선명히 보인다. 도톰한 입자들은 조용히 역사를 가로지르며 얼룩무늬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변화는 갑작스레 온다. 감기가 몸에 찾아들듯, 봄이 마른 땅이 내리쪼이듯, 후텁지근한 습기가 겨드랑을 훅 하고 끼치듯. 버스는 늘 예상보다 늦는다. 다급증에 1577로 시작하는 번호로 ARS를 걸다 눈에 걸린 풍경이 때론 낯설어서 쓸 데 없는 요금을 낭비한다.

광주로 향하는 버스에서부터,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의 채도를 헤아리며 잠을 청할 때까지 생생히 떠오르던 입말들이 두통의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릴것만 같아 맨 몸으로 일어나 창을 닫는다. 눈을 감으면, 물길을 헤치며 단어와 문장을 밀렵하는 사냥꾼이 된다. 여적 피가 식지 않은 그것들이 뒤엉긴 데 발을 헛디뎌 넘어질 것이 뻔한 풋내기 사냥꾼의 꿈은 오월처럼 짧다.

다만, 변화는 갑작스레 찾아온다. 이야기들의 밖에 있다고 믿었던 때로부터 이야기의 동심원으로 발을 들이는 것은 단지 메가폰을 들고서만 가능한 것만은 아닐 게다. 오래도록 뜸을 들이는 것이라도, 백 퍼센트의 확신이 아닐지라도, 찌개에 숟갈을 섞듯 정직하게 나를 내놓아 본다. 한참의 허공이 여간 낯설지 않은 얼굴로 바뀌는 순간에, 글자들이 써 내려져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얼굴이 될 것이며, 맞은 편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저 조금 덜 빈곤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로 한다. 1577로 시작하는 번호에 마음을 걸지는 않기로도 한다.

목요일, 3월 25, 2010

수요일, 3월 24, 2010

buzz-wor(l)d-s

묵은 글을 다시 마주한다. 자라는 손톱이 키보드에 엉긴다는, 혹은 손목 아래쪽을 얹은 키패드가 너무 뜨뜻하다는, 그런 류의 미적지근한 이유로 글에 허옇게 내려 앉은 먼지를 후후 불기까지 한참이 걸린다. 문장마다 스민 시간의 각질을 벗기어 내면 새 살이 돋을까 하다가도, 그 전에 내려 앉을 딱지가 두려워 팔짱을 풀지 않고 서성인다. 나무 계단을 바삐 딛다, 마주 오르는 사내들의 욕설 섞인 사투리를 들었을 때, 문득 앞으로부터 튕겨, 달음질쳐오던 과거의 어느 시점, 어떤 장소에 불현듯 놓이게 되는 것처럼. 빈 리어카에 쓰레기를 주워 담는 아이들 사이로 절뚝거리며 걸었던, 이미 변성기가 지난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바퀴를 쓸며 너는 참 귀가 작구나, 라고 말하던, 시계탑과 늑목과 오래 된 문구점들이 밀물이 되어 발목을 잠근다. 수상한 인력에 저항하며 꿋꿋이 걸으리라. 나는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향한다. 그것이 앞인지 뒤인지는 모른다. 나는 그저 약속을 지키려 한다. 휴대폰 일정에 표시된 글자들에 반역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시간이며 또한 시계탑이 되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책 무덤에 자란 파르레한 것들이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던 때부터 나는 기억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한다. 아니, 말하기로 한다. 쓰기로 한다. 식은 잔이라도 건네려고 한다. 아이 원 투 롸잇, 아이 원 투 비 롸잇, 롸잇, 댓츠 롸잇, 롸잇 나우, 롸잇 히어. 글자들이 몸을 일으킨다.

일요일, 3월 21, 2010

so to speak,

황산가봐요. 그 예민한 지각에 나는 새삼 그가 큰 눈을 하고 선선히 들려 준 어떤 시절이 한 숨 호흡으로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하늘이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누런 잿빛으로 드문드문 돋아 난 고층 아파트 사이를 메우고 있었다. 우리는 무단횡단을 한다. 무단횡단을 할 수록 아파트로부터 멀어진다. 그는 언젠가는 더 이상 무단횡단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네, 언젠가는. 나는 그 언젠가의 언젠가로부터 그의 걸음을 좇는 시늉을 한다. 현관과 방 사이의 거리가 작은 시내 같다고 생각하며, 바짓가랑을 걷어매고 훌쩍 뛰어, 극장으로 들어간다. 바닥에 푸르스름하게 자리잡은 습기를 탓하며 주인은 등을 끈다. 빛과 공기와 냄새와 소리에 민감한 시인을 오랜 시간 심문하는 내용이다. 윽박을 침묵이 대신하는 상에는 권유처럼 찻잔이 놓여 있다. 차는 빠르게 식는다. 해가 떠오르지 않았던 것 같은 오후다. 결국 동반한 우산의 무게가 소용없게 되는,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다. 담배를 태워야 할 타이밍은 언제고 멀리에 있다. 1호선 국철이 우악스럽게 쏟아내는 종종걸음의 늙은이들처럼. 마주 걸은 짧은 시간이 아주 오랜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다시 그만큼의 시간이 흐른 언젠가.

월요일, 3월 15, 2010

the cheshire faith.

그는 긴급히 문을 두드린다. 그는 택배기사다. 그는 중국집 배달 점원이다. 그는 가스 검침원이다. 그가 녹슨 문을 다섯 번씩 일곱 차례 두드릴 때까지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는 찾는 이의 이름을 절반 쯤의 짜증을 섞어, 혹은 다소간 간곡하게 부른다. 아침이 오지 않은 이들은 그 이름이 제 것이 아님을 인지하고서야 다시 어둠을 덮어 쓸 것이다. 누군가 이름을 불러준 적이 언제였던가, 하고 불현듯 튀는 생각을 재우기 위해 속으로 자장가를 부를 것이다. 다시 침묵이 오리라. 풀색 시계가 슬몃슬몃 엉금거리고, 옆 방에서 제습기가 들썩이는 낮은 진동 외에는 모든 것이 입을 다문 평형 상태가. 어느 순간 이름을 부르던 남자의 긴급함과 간곡함, 그리고 짜증마저도 아이들과 함께 사라진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증발한다. 침묵은 평온하기보다 위태롭다. 평형대 위에 선 달음질이 언제고 무너질 준비가 된 것처럼. 고향없는 도시에서 누군가를 믿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은 투박한 택배 상자를 건네받을 때이거나, 온기가 불어가는 자장면 그릇을 받아 안을 때이거나, 허리춤에 검침표를 주렁주렁 매단 검침원을 부엌간에 들이는 때일는지도 모른다. 여기, 여기에. 부름받지 않아도 내가 여기에 있을 권리가 있을까. 너는 그렇다고 말하면서도 고개를 가로젓는다. 부정의 흔들림만이 체셔 고양이의 웃음처럼 빛이 사라진 자리에서 이죽댄다.

월요일, 1월 18, 2010

voiceless room.

바싹 마른 벽의 모서리들이 혹처럼 부풀어 오른다. 처음 이사올 때부터 들뜬 데가 있던 구석들이, 더운 공기와 찬 공기가 만나는 틈서리로 건조하게 입을 쩍쩍 벌리는 모양이다. 처음엔 종잇장이 드나들 틈이었건만, 이제는 손바닥을 집어넣어도 삼킬 듯한 그 사이로는 페인트 흉이 진 콘크리트 벽이 허옇게 드러난다. 도배를 새로 할 날이 올까. 일 년도 전에 이 방으로 이사를 온 첫 날, 벽지바른 풀 냄새가 채 빠져나가지 못한 빈 방에 갈 곳 없는 책들을 5열 종대로 세우고 겨울 이불을 반으로 접어 몸을 밀어넣었더랬다. 아, 그 방에 무수한 시간의 각질들이 쌓이고, 살점들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곧 밉살스레 도톰한 새 살이 차올랐다. 셀 수 없이 훔쳐낸 바닥의 묵은 때가 자리를 잡을 때쯤 아마 나는 이 방에 없을 것 같다. 까치발로 그렸던 미래가, 계단처럼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할 때엔 걸음을 딛고 싶은 마음이 매섭게 달아나곤 했다. 사족이 긴 영화의 말미처럼, 엉덩이가 들썩댄다. 허나 극장에는 출구가 없다. 방이 안쪽으로 더 부풀어 오르지 않기만을, 나는 이제 이 세계의 껍질을 깨어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문득, 빛이 투과된 폴라로이드 사진 뒤로 나이든 우리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겹쳐진다. 힘껏 졸다 보면 도착해 있을 것 같은 시간의 어디쯤, 나는 우두커니 차창에 비친 사내의 얼굴을 노려본다. 그의 얼굴에는 목소리가 없다. 강렬한 허기가 서리처럼 그의 목소리를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