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11월 29, 2010
time out.
목요일, 8월 19, 2010
목요일, 7월 08, 2010
Aqualung (2002), Everything Changed.
화요일, 7월 06, 2010
여름, 사막의 별.
일요일, 6월 13, 2010
안녕, 연애시대.
화요일, 6월 08, 2010
토요일, 5월 29, 2010
기다리는 이야기.
잔물결처럼 빛살이 친다. 응달에 놓인 이에게 볕은 오히려 더 선명히 보인다. 도톰한 입자들은 조용히 역사를 가로지르며 얼룩무늬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변화는 갑작스레 온다. 감기가 몸에 찾아들듯, 봄이 마른 땅이 내리쪼이듯, 후텁지근한 습기가 겨드랑을 훅 하고 끼치듯. 버스는 늘 예상보다 늦는다. 다급증에 1577로 시작하는 번호로 ARS를 걸다 눈에 걸린 풍경이 때론 낯설어서 쓸 데 없는 요금을 낭비한다.
광주로 향하는 버스에서부터,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의 채도를 헤아리며 잠을 청할 때까지 생생히 떠오르던 입말들이 두통의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릴것만 같아 맨 몸으로 일어나 창을 닫는다. 눈을 감으면, 물길을 헤치며 단어와 문장을 밀렵하는 사냥꾼이 된다. 여적 피가 식지 않은 그것들이 뒤엉긴 데 발을 헛디뎌 넘어질 것이 뻔한 풋내기 사냥꾼의 꿈은 오월처럼 짧다.
다만, 변화는 갑작스레 찾아온다. 이야기들의 밖에 있다고 믿었던 때로부터 이야기의 동심원으로 발을 들이는 것은 단지 메가폰을 들고서만 가능한 것만은 아닐 게다. 오래도록 뜸을 들이는 것이라도, 백 퍼센트의 확신이 아닐지라도, 찌개에 숟갈을 섞듯 정직하게 나를 내놓아 본다. 한참의 허공이 여간 낯설지 않은 얼굴로 바뀌는 순간에, 글자들이 써 내려져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얼굴이 될 것이며, 맞은 편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저 조금 덜 빈곤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로 한다. 1577로 시작하는 번호에 마음을 걸지는 않기로도 한다.
목요일, 3월 25, 2010
수요일, 3월 24, 2010
buzz-wor(l)d-s
일요일, 3월 21, 2010
so to speak,
황산가봐요. 그 예민한 지각에 나는 새삼 그가 큰 눈을 하고 선선히 들려 준 어떤 시절이 한 숨 호흡으로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하늘이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누런 잿빛으로 드문드문 돋아 난 고층 아파트 사이를 메우고 있었다. 우리는 무단횡단을 한다. 무단횡단을 할 수록 아파트로부터 멀어진다. 그는 언젠가는 더 이상 무단횡단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네, 언젠가는. 나는 그 언젠가의 언젠가로부터 그의 걸음을 좇는 시늉을 한다. 현관과 방 사이의 거리가 작은 시내 같다고 생각하며, 바짓가랑을 걷어매고 훌쩍 뛰어, 극장으로 들어간다. 바닥에 푸르스름하게 자리잡은 습기를 탓하며 주인은 등을 끈다. 빛과 공기와 냄새와 소리에 민감한 시인을 오랜 시간 심문하는 내용이다. 윽박을 침묵이 대신하는 상에는 권유처럼 찻잔이 놓여 있다. 차는 빠르게 식는다. 해가 떠오르지 않았던 것 같은 오후다. 결국 동반한 우산의 무게가 소용없게 되는,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다. 담배를 태워야 할 타이밍은 언제고 멀리에 있다. 1호선 국철이 우악스럽게 쏟아내는 종종걸음의 늙은이들처럼. 마주 걸은 짧은 시간이 아주 오랜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다시 그만큼의 시간이 흐른 언젠가.
월요일, 3월 15, 2010
the cheshire faith.
그는 긴급히 문을 두드린다. 그는 택배기사다. 그는 중국집 배달 점원이다. 그는 가스 검침원이다. 그가 녹슨 문을 다섯 번씩 일곱 차례 두드릴 때까지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는 찾는 이의 이름을 절반 쯤의 짜증을 섞어, 혹은 다소간 간곡하게 부른다. 아침이 오지 않은 이들은 그 이름이 제 것이 아님을 인지하고서야 다시 어둠을 덮어 쓸 것이다. 누군가 이름을 불러준 적이 언제였던가, 하고 불현듯 튀는 생각을 재우기 위해 속으로 자장가를 부를 것이다. 다시 침묵이 오리라. 풀색 시계가 슬몃슬몃 엉금거리고, 옆 방에서 제습기가 들썩이는 낮은 진동 외에는 모든 것이 입을 다문 평형 상태가. 어느 순간 이름을 부르던 남자의 긴급함과 간곡함, 그리고 짜증마저도 아이들과 함께 사라진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증발한다. 침묵은 평온하기보다 위태롭다. 평형대 위에 선 달음질이 언제고 무너질 준비가 된 것처럼. 고향없는 도시에서 누군가를 믿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은 투박한 택배 상자를 건네받을 때이거나, 온기가 불어가는 자장면 그릇을 받아 안을 때이거나, 허리춤에 검침표를 주렁주렁 매단 검침원을 부엌간에 들이는 때일는지도 모른다. 여기, 여기에. 부름받지 않아도 내가 여기에 있을 권리가 있을까. 너는 그렇다고 말하면서도 고개를 가로젓는다. 부정의 흔들림만이 체셔 고양이의 웃음처럼 빛이 사라진 자리에서 이죽댄다.
월요일, 1월 18, 2010
voiceless room.
바싹 마른 벽의 모서리들이 혹처럼 부풀어 오른다. 처음 이사올 때부터 들뜬 데가 있던 구석들이, 더운 공기와 찬 공기가 만나는 틈서리로 건조하게 입을 쩍쩍 벌리는 모양이다. 처음엔 종잇장이 드나들 틈이었건만, 이제는 손바닥을 집어넣어도 삼킬 듯한 그 사이로는 페인트 흉이 진 콘크리트 벽이 허옇게 드러난다. 도배를 새로 할 날이 올까. 일 년도 전에 이 방으로 이사를 온 첫 날, 벽지바른 풀 냄새가 채 빠져나가지 못한 빈 방에 갈 곳 없는 책들을 5열 종대로 세우고 겨울 이불을 반으로 접어 몸을 밀어넣었더랬다. 아, 그 방에 무수한 시간의 각질들이 쌓이고, 살점들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곧 밉살스레 도톰한 새 살이 차올랐다. 셀 수 없이 훔쳐낸 바닥의 묵은 때가 자리를 잡을 때쯤 아마 나는 이 방에 없을 것 같다. 까치발로 그렸던 미래가, 계단처럼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할 때엔 걸음을 딛고 싶은 마음이 매섭게 달아나곤 했다. 사족이 긴 영화의 말미처럼, 엉덩이가 들썩댄다. 허나 극장에는 출구가 없다. 방이 안쪽으로 더 부풀어 오르지 않기만을, 나는 이제 이 세계의 껍질을 깨어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문득, 빛이 투과된 폴라로이드 사진 뒤로 나이든 우리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겹쳐진다. 힘껏 졸다 보면 도착해 있을 것 같은 시간의 어디쯤, 나는 우두커니 차창에 비친 사내의 얼굴을 노려본다. 그의 얼굴에는 목소리가 없다. 강렬한 허기가 서리처럼 그의 목소리를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