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싹 마른 벽의 모서리들이 혹처럼 부풀어 오른다. 처음 이사올 때부터 들뜬 데가 있던 구석들이, 더운 공기와 찬 공기가 만나는 틈서리로 건조하게 입을 쩍쩍 벌리는 모양이다. 처음엔 종잇장이 드나들 틈이었건만, 이제는 손바닥을 집어넣어도 삼킬 듯한 그 사이로는 페인트 흉이 진 콘크리트 벽이 허옇게 드러난다. 도배를 새로 할 날이 올까. 일 년도 전에 이 방으로 이사를 온 첫 날, 벽지바른 풀 냄새가 채 빠져나가지 못한 빈 방에 갈 곳 없는 책들을 5열 종대로 세우고 겨울 이불을 반으로 접어 몸을 밀어넣었더랬다. 아, 그 방에 무수한 시간의 각질들이 쌓이고, 살점들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곧 밉살스레 도톰한 새 살이 차올랐다. 셀 수 없이 훔쳐낸 바닥의 묵은 때가 자리를 잡을 때쯤 아마 나는 이 방에 없을 것 같다. 까치발로 그렸던 미래가, 계단처럼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할 때엔 걸음을 딛고 싶은 마음이 매섭게 달아나곤 했다. 사족이 긴 영화의 말미처럼, 엉덩이가 들썩댄다. 허나 극장에는 출구가 없다. 방이 안쪽으로 더 부풀어 오르지 않기만을, 나는 이제 이 세계의 껍질을 깨어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문득, 빛이 투과된 폴라로이드 사진 뒤로 나이든 우리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겹쳐진다. 힘껏 졸다 보면 도착해 있을 것 같은 시간의 어디쯤, 나는 우두커니 차창에 비친 사내의 얼굴을 노려본다. 그의 얼굴에는 목소리가 없다. 강렬한 허기가 서리처럼 그의 목소리를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