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긴급히 문을 두드린다. 그는 택배기사다. 그는 중국집 배달 점원이다. 그는 가스 검침원이다. 그가 녹슨 문을 다섯 번씩 일곱 차례 두드릴 때까지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는 찾는 이의 이름을 절반 쯤의 짜증을 섞어, 혹은 다소간 간곡하게 부른다. 아침이 오지 않은 이들은 그 이름이 제 것이 아님을 인지하고서야 다시 어둠을 덮어 쓸 것이다. 누군가 이름을 불러준 적이 언제였던가, 하고 불현듯 튀는 생각을 재우기 위해 속으로 자장가를 부를 것이다. 다시 침묵이 오리라. 풀색 시계가 슬몃슬몃 엉금거리고, 옆 방에서 제습기가 들썩이는 낮은 진동 외에는 모든 것이 입을 다문 평형 상태가. 어느 순간 이름을 부르던 남자의 긴급함과 간곡함, 그리고 짜증마저도 아이들과 함께 사라진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증발한다. 침묵은 평온하기보다 위태롭다. 평형대 위에 선 달음질이 언제고 무너질 준비가 된 것처럼. 고향없는 도시에서 누군가를 믿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은 투박한 택배 상자를 건네받을 때이거나, 온기가 불어가는 자장면 그릇을 받아 안을 때이거나, 허리춤에 검침표를 주렁주렁 매단 검침원을 부엌간에 들이는 때일는지도 모른다. 여기, 여기에. 부름받지 않아도 내가 여기에 있을 권리가 있을까. 너는 그렇다고 말하면서도 고개를 가로젓는다. 부정의 흔들림만이 체셔 고양이의 웃음처럼 빛이 사라진 자리에서 이죽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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