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물결처럼 빛살이 친다. 응달에 놓인 이에게 볕은 오히려 더 선명히 보인다. 도톰한 입자들은 조용히 역사를 가로지르며 얼룩무늬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변화는 갑작스레 온다. 감기가 몸에 찾아들듯, 봄이 마른 땅이 내리쪼이듯, 후텁지근한 습기가 겨드랑을 훅 하고 끼치듯. 버스는 늘 예상보다 늦는다. 다급증에 1577로 시작하는 번호로 ARS를 걸다 눈에 걸린 풍경이 때론 낯설어서 쓸 데 없는 요금을 낭비한다.
광주로 향하는 버스에서부터,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의 채도를 헤아리며 잠을 청할 때까지 생생히 떠오르던 입말들이 두통의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릴것만 같아 맨 몸으로 일어나 창을 닫는다. 눈을 감으면, 물길을 헤치며 단어와 문장을 밀렵하는 사냥꾼이 된다. 여적 피가 식지 않은 그것들이 뒤엉긴 데 발을 헛디뎌 넘어질 것이 뻔한 풋내기 사냥꾼의 꿈은 오월처럼 짧다.
다만, 변화는 갑작스레 찾아온다. 이야기들의 밖에 있다고 믿었던 때로부터 이야기의 동심원으로 발을 들이는 것은 단지 메가폰을 들고서만 가능한 것만은 아닐 게다. 오래도록 뜸을 들이는 것이라도, 백 퍼센트의 확신이 아닐지라도, 찌개에 숟갈을 섞듯 정직하게 나를 내놓아 본다. 한참의 허공이 여간 낯설지 않은 얼굴로 바뀌는 순간에, 글자들이 써 내려져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얼굴이 될 것이며, 맞은 편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저 조금 덜 빈곤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로 한다. 1577로 시작하는 번호에 마음을 걸지는 않기로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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